"성교육, 지식보다 '마음'을 먼저 가르쳐야 하는 이유
성교육을 단순히 신체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이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성장의 기회’를 놓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학부모님들이 조심스럽게 꺼내놓는 고민들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성(性)에 대한 지식보다 더 깊은 ‘관계와 존중’에 대한 갈증이 숨어 있습니다.
얼마 전 상담실을 찾은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의 어머니는 몹시 당황한 기색이었습니다.
아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단짝 친구 ‘민수(가명)’가 알고 보니 예쁜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였다는 사실을 학교 행사에서야 알게 되신 거죠.
어머니는 배신감과 당황함이 뒤섞인 목소리로 아이를 다그쳤다고 합니다.
"왜 그 친구가 여자애라고 말 안 했어?" 하지만 아이는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습니다.
"엄마, 그게 왜 중요해? 민수는 나랑 말이 제일 잘 통하는걸."
우리는 아이가 똑똑하게 성별을 구분하고 이성 친구를 경계하기를 바라지만,
정작 아이는 성별이라는 편견 너머의 ‘우정’을 보고 있었습니다.
부모의 과민반응은 아이에게 "이성 친구와의 우정은 부끄러운 것인가?"라는 오해를 심어줄 수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건 취조가 아니라, "성별에 상관없이 마음이 맞는 친구를 사귀다니,
우리 아들 참 멋진걸!"이라는 담백한 인정입니다.
마음이 단단한 아이는 타인을 성별로 가두지 않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하는 법을 배울 때 자라납니다.
유치원생 자녀가 몸을 비비는 행동을 목격했을 때, 부모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공포를 느낍니다.
'벌써 자위를?' 하는 극단적인 걱정은 아이를 향한 날 선 비난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하지만 아이에게 그것은 그저 손가락을 빨거나 코를 파는 것과 같은, 신기한 신체적 탐색일 뿐입니다.
혼내거나 수치심을 주는 대신 "그곳은 우리 몸에서 아주 예민하고 소중한 곳이야. 아껴줘야 해"라고 말하며 장소와 예절의 개념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성교육은 내 몸의 주인이 나임을 깨닫고, 소중한 것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중학생 자녀가 이성 친구와 헤어지고 세상이 끝난 듯 울고 있다면,
"공부나 하지 뭘 그러니"라는 말 대신 아이의 슬픔 곁에 가만히 앉아주세요.
성교육의 정점은 결국 ‘관계’에 있습니다.
누군가를 깊이 좋아해 본 마음,
그리고 그 관계가 끝났을 때 상대의 결정을 존중하며 자신의 슬픔을 다스리는 법.
이별은 타인의 경계를 배우고 내 마음을 단단하게 다지는 가장 아픈, 그러나 가장 확실한 교육입니다.
"선생님, 성교육은 언제부터인가요?"라는 질문에 저는 늘 이렇게 답합니다.
"아이의 질문이 시작된 바로 지금입니다."
거창한 이론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아이의 돌발 행동을 '문제'가 아닌 '질문'으로 읽어주는 부모의 유연함,
그리고 성을 부끄러운 금기가 아닌 ‘나를 아끼는 법’으로 연결해 주는 따뜻한 대화면 충분합니다.
똑똑하게 성 지식을 나열하는 아이보다, 자신과 타인을 진심으로 존중할 줄 아는 마음 단단한 아이.
우리 아이가 그런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면, 오늘 아이의 난처한 질문에 먼저 환하게 웃어주세요.
"좋은 질문이야!"라고 말이죠.
"아이와 성교육에 대해 나누었던 당황스럽지만 소중한 순간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