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번호 전화 한 통에 무너지는 마음

불안은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 밤만큼은 편히 쉬자

성취 뒤에 찾아온 불청객, 불안


올 한 해, 저는 제 이름이 적힌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치열하게 자료를 찾고, 문장을 다듬으며 하권까지 마무리지었을 때의 그 벅참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하지만 작가라는 근사한 이름표를 달았음에도,

제 일상의 밑바닥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불안'이 앙금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쿠팡의 뉴스, 그리고 걸려온 전화 한 통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쿠팡과 롯데카드의 정보 유출 소식은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쿠팡에서 직접적인 안내 알림이 오지 않지만,

그 빈자리를 채운 건 정체 모를 '낯선 번호'의 연락들이었습니다.

"본인 확인을 위해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말씀해 주세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최근 쿠팡 유출 사고를 빙자해 개인정보를 탈취하거나

카드 발급 여부를 확인하라는 식의 교묘한 피싱이 기승을 부린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책을 쓰며 세상의 이치를 다 안다고 자부했던 작가인 저조차도,

보이스피싱으로 삼 사일만에 내돈이 사라져 없어지고

이상한 전화와 주민번호가 언급되는 순간에는 속수무책으로 가슴이 뛰고 손이 떨렸습니다.


akhil-abhilash-oLJkBPrBozs-unsplash.jpg 불안이 엄습할 때, 창밖의 계절이 변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5분의 시간이 소중해요


사회적 위기가 내 삶의 안방까지 침범할 때


우리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살아갑니다.

내가 믿고 이용하던 플랫폼이 흔들리고,

나의 가장 사적인 정보가 유통되고 있다는 소식은 단순한 뉴스를 넘어 실존적인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질까 봐,

내가 공들여 쌓아온 일들이 사회적 파도 한 번에 끊어질까 봐 느끼는 불안들.

쿠팡이나 카드사 사태를 보며 우리가 느끼는 건

'편리함의 상실'이 아니라 '일상의 붕괴'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pexels-polina-kovaleva-6541167.jpg 책을 냈을 때 느꼈던 그 순수한 열정을 다시 떠올려 글쓰기를 시작해요

불안은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해왔지만,

저 역시 이 불안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깨닫습니다.

불안은 억지로 몰아내야 할 적이 아니라,

이 험난한 세상을 조심스럽게 살아가려는 내 마음의 '경보 장치'라는 것을요.


세상의 위기는 내일도 계속될 것이고, 또 다른 낯선 번호의 유혹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노트북을 닫고, 불안의 목소리를 잠시 줄여보려 합니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이 밤, 애써 책 한 권을 펴낸 내 손을 잡아주며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수고했어. 불안해도 괜찮으니, 오늘 밤만큼은 부디 편안히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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