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사는 아이는 더 많은 풍경을 봅니다

[프롤로그] 아이의 말문을 여는 부모의 마음 근육

아이의 진단을 받고 돌아오던 날,

부모님의 세상은 아마도 멈춰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남들은 저만치 앞서 달려가는 것 같은데,

내 아이만 제자리에 멈춰 서 있거나 뒤로 처지는 것 같은 공포.

그 속도전에서 밀려났다는 상실감이 부모님의 마음을 까맣게 태웠으리라는 것을

저는 교실의 창가에서 매일 마주하곤 합니다.


하지만 제가 교실에서 발견한 진실은 조금 달랐습니다.

모두가 앞만 보고 질주하느라 놓쳐버리는 길가의 작은 들꽃,

매일 바뀌는 구름의 모양,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수줍은 미소들...


ana-curcan-koQw5wuzhzY-unsplash.jpg 두툼하고 따뜻한 어른의 손이 작고 부드러운 아이의 손을 포근하게 잡고 있는 모습


우리 아이들은 남들이 100미터를 질주할 때,

그 길 위에 놓인 수만 가지의 풍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느리게 걷기 때문에 비로소 부모님의 손은 더 오래 잡혀 있을 수 있었고,

아이의 속도에 맞춰 걸음을 늦춘 덕분에

우리는 이전에는 결코 보지 못했던 '다정한 세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책은 속도의 세상에서 상처받은 '금쪽이' 부모님들을 향한 위로의 기록입니다.

아이의 말문이 틔지 않아 가슴을 치던 밤들이 사실은

아이의 마음속 깊은 곳에 더 넓은 호수를 만드는 시간이었음을,

그리고 부모님의 단단해진 마음 근육이

결국 아이를 세상으로 이끄는 가장 따뜻한 통로가 될 것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akhil-abhilash-oLJkBPrBozs-unsplash.jpg 평화로운 풍경과 부모님을 응원하는 따뜻한 차 한 잔.

느리게 산다는 것은 뒤처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더 많은 풍경을 보고, 더 깊게 세상을 느끼며,

마침내 자신만의 속도로 단단한 꽃을 피워내는 과정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의 느린 걸음 곁에서 함께 숨 고르기를 하고 계실 모든 부모님께,

제가 교실에서 본 그 아름다운 풍경들을 하나씩 꺼내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비로소 보이는 이 따뜻한 풍경들이,

부모님의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우는 든든한 기둥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