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의 영화관에서 배운 '진짜' 회복탄력성
지난 시간 동안 우리는 캐나다의 교실과 사회가 아이들을 어떻게 기다려주는지,
그리고 1등이 없어도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그 긴 여정의 마지막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30년 특수교사로 살아온 제가 캐나다에서 마주했던, 가장 부끄럽고도 뭉클했던 어느 날의 고백입니다.
토론토에 살 때의 일입니다.
밀알선교단 아이들과 함께 단체로 영화 관람을 갔습니다.
사실 저는 출발 전부터 마음을 졸이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경험 때문이었죠.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놓인 우리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거나 돌발 행동을 할까 봐,
교사인 저조차 늘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입안에 머금고 살아야 했으니까요.
영화가 시작되었고,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한 아이는 소리를 질렀고,
몇몇 아이들은 자리에 앉지 않고 복도를 뛰어다니기도 했습니다.
제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아, 사람들이 싫어할 텐데. 쫓겨나면 어떡하지?'
저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살폈습니다.
따가운 시선과 혀를 차는 소리, 비난의 눈초리를 감당할 준비를 하면서요.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관객들은 스크린을 볼 뿐, 소란 피우는 우리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차가운 무관심이 아니었습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소리를 지르는 건, 마치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야"
라고 말하는 듯한, 아주 덤덤하고도 따뜻한 '무심함'이었습니다.
그 낯선 평화 속에서, 저는 비로소 팽팽하게 당기고 있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아, 여기서는 숨지 않아도 되는구나.'
교사인 저도 이렇게 안도가 되는데, 부모님들은 얼마나 좋으실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보니 가슴 아픈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른 민족의 어머니들은 아이가 소리를 지르든 말든,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며 자유로운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를 굳이 숨기려 하지도, 주눅 들지도 않았죠.
하지만 유독 우리 한국 어머니들만이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캐나다라는 사회가 "괜찮다"고, "눈치 보지 말라"고 문을 활짝 열어주었는데도,
한국에서 겪었던 차별과 시선의 상처가 너무 깊어서일까요.
어머니들은 여전히 '죄송함'의 굴레를 벗지 못한 채 아이를 단속하느라 전전긍긍하고 계셨습니다.
그 뒷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저는 마음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우리는 왜,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늘 죄인처럼 살아야 했을까요.
바람이 세게 불면 나무는 흔들립니다.
하지만 뿌리가 깊은 나무는 뽑히지 않습니다.
제가 30년 교직 생활과 캐나다 이민 생활을 통해 배운 '회복탄력성'은
강철처럼 단단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힘들면 흔들려도 된다는 것,
아이가 조금 소란스러워도 그것이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세상의 시선보다 내 아이의 존재 그 자체를 더 당당하게 바라봐 주는 것. 그것이 진짜 강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들, 그리고 독자 여러분. 우리는 여전히 흔들릴 것입니다.
아이 때문에, 혹은 세상의 편견 때문에 아플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흔들리는 것은 약해서가 아니라,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캐나다의 그 영화관에서처럼, 이제는 우리 스스로에게 말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흔들려도 괜찮아. 우리는 절대 부러지지 않을 테니까."
그동안 <1등 없는 교실>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