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라는 이름의 파산, 그리고 다시 시작된 부모 공부

나의 부족함이 아이에겐 자립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저는 당당했습니다.

30년 넘게 특수교육 전문가로 살며 수천 명의 아이를 만났고,

부모들에게 ‘정답’을 일러주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강의실 단상 위에서 제가 내뱉는 말들은 권위가 있었고,

누구보다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잘 안다고 자부했습니다.


하지만 캐나다라는 낯선 땅에 도착한 순간,

제가 가졌던 그 화려한 지식의 성벽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습니다.

전문가로서의 삶은 그곳에서 철저히 ‘파산’ 선고를 받았습니다.

pexels-yuraforrat-11625296.jpg "아이들은 부모의 말보다 부모의 삶(뒷모습)을 먹고 자란다"


이민 1세대의 삶은 우아한 교육 담론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내일의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서,

아이의 정서적 교감이나 세심한 관찰은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낮에는 거친 일터에서 몸을 부대끼고, 밤에는 녹초가 되어 돌아오는 일상의 반복이었습니다.

교육 전문가라는 사람이 정작 내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오늘 마음은 어땠는지 물어볼 기운조차 없었습니다.


가장 챙피하고 아픈 기억은 아이의 학교 행사를 챙기지 못하거나,

유창하지 못한 영어 때문에 선생님과의 상담을 피하고 싶어 했던 제 모습입니다.

한국이었다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아이의 권리를 주장했을 전문가가,

타향살이의 고단함 앞에서는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기에 급급한 ‘무력한 엄마’일 뿐이었습니다.

‘전문가인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자괴감은 매일 밤 저를 날카롭게 찔렀습니다.


pexels-streetwindy-4216480.jpg 다시 시작된 부모공부 : 부모의 부족함 속에서도 스스로 단단하게 자라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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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처절한 ‘전문가의 파산’이 일어난 자리에 새로운 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전의 공부가 책과 이론을 통한 것이었다면, 이번 공부는 제 삶의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완벽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고 빈틈을 보일 때,

아이들은 그 틈을 원망으로 채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틈을 통해 부모의 고단한 삶을 엿보았고,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꾸려가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전문가로서 정답을 제시할 때보다,

제가 무너지고 애쓰는 뒷모습을 보일 때 아이들은 더 단단하게 자라났습니다.

참 역설적이었습니다.

부모로서의 권위를 잃고 ‘파산’했을 때,

비로소 저는 진짜 ‘부모’가 무엇인지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부모 공부는 세련된 스킬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초라함까지도 아이들 앞에 솔직하게 내보이고 그 안에서 함께 길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부모 공부를 시작합니다.

전문가라는 계급장을 떼고, 그저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말입니다.

이 길은 여전히 부끄럽고 아프지만, 그렇기에 더욱 진실한 길이 될 것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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