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차 특수교사가 마주한 '부모'라는 이름의 무거운 무게
나를 돌보는 요가 시간, 완벽이라는 강박을 내려놓는 연습 중입니다.
어제는 완벽한 부모라는 강박을 내려놓게 한 캐나다의 숨 쉬는 땅에 대해 짧은 글을 남겼습니다. 많은 분이 그 ‘숨 쉴 틈’에 공감해 주시는 것을 보며, 우리가 얼마나 ‘완벽’이라는 이름의 좁은 감옥 안에 스스로를 가둬왔는지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특수교사로 아이들을 만난 지 어느덧 30년이 넘었습니다.
수천 명의 부모님을 현장에서 마주하며 제가 발견한 서글픈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뒤처지거나 아프면, 모든 화살을 자신에게 돌린다는 점입니다.
"내가 그때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내가 완벽한 부모였더라면 아이가 덜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깊은 죄책감이지요.
하지만 제가 캐나다에서 보낸 16년 2개월의 시간은 저에게 전혀 다른 말을 건넸습니다.
그곳의 너른 마당에서 만난 부모들은 아이의 장애나 부족함을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라,
그저 '함께 살아갈 삶의 무늬'로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이를 바꾸려 하기보다, 아이가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더 집중했습니다.
현재 브런치에서 집필 중인 <완벽한 부모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는
결코 부모로서의 책임을 회피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도 실수할 수 있고, 때로는 지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자는 고백입니다.
내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아이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최근 저 또한 고콜레스테롤 진단을 받고 매일 요가 매트 위에 서며 소중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습니다.
내 몸의 수치 하나도 내 뜻대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데,
하물며 한 인간인 아이의 인생을 완벽하게 설계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욕심이었는지를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흠 없는 완벽함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회복탄력성'과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캐나다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깨달은 가장 큰 진리는,
부모가 먼저 숨을 쉬어야 아이도 숨을 쉰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너그럽게 받아들일 때, 그 따뜻한 온기가 아이의 닫힌 말문을 여는 마중물이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영주권 준비로, 혹은 아이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고 계신가요?
괜찮습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으며, 그 자체로 귀한 부모입니다.
완벽이라는 짐을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아이와 함께 걷는 이 길이 고통이 아닌 여행이 될 것입니다.
어느 독자분께서 말씀하신 '여권 사진이 부럽다'는 그 한마디가 제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 부러움 뒤에 숨겨진 간절함과 무게를 알기에, 저는 오늘 더 정성껏 글을 적어 내려갑니다.
영주권이라는 종이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견디고 있는 여러분의 '마음 근육'이니까요."
"더 자세한 캐나다 교육 현장의 이야기는 제 워드프레스에서도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