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겉모습을 다듬느라, 정작 마음의 자리는 비워두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결핍을 채우려 애쓰기보다, 아이가 이미 품고 있는 고유한 빛을 먼저 바라봐 주세요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부모님의 사랑이 때로는 ‘아이를 향한 끝없는 수선’으로 변하는 순간을 목격하곤 합니다.
처음엔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랐던 마음이, 아이가 자랄수록 조금 더 키가 컸으면,
조금 더 공부를 잘했으면, 조금 더 날씬했으면 하는 욕심으로 번져갑니다.
부족한 조각을 찾아 메우려는 부모의 노력은 눈물겹습니다.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유명한 학원을 찾고,
외모가 경쟁력이 될까 싶어 병원을 전전하며 아이의 몸과 시간을 관리합니다.
그렇게 부모의 정답지에 맞춰 아이를 다듬어갈 때, 부모는 비로소 안도감을 느낍니다.
"내가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 하고 말이죠.
하지만 부모가 아이의 ‘부족함’이라는 구멍을 메우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세울 때,
정작 아이의 영혼은 숨을 쉴 자리를 잃어버립니다.
부모의 가이드라인에 갇힌 아이는 어느 날부터인가 설명하기 힘든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옷을 벗어 던지거나,
이유 없는 분노를 표출하고, 때로는 깊은 무기력에 빠지기도 합니다.
당황한 부모는 다시 묻습니다. "선생님, 이 나쁜 버릇을 어떻게 고쳐야 할까요?"
하지만 이것은 ‘나쁜 버릇’이 아닙니다.
부모의 과도한 통제와 욕망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린 아이가 보내는‘소리 없는 비명’입니다.
몸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커졌을지 모르지만,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과부하가 걸린 것입니다.
특수교육 현장에서 30년을 지내며 제가 배운 가장 아픈 진실은 이것입니다.
부족한 20%를 채우려다 아이가 가진 80%의 반짝임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부모님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입니다.
캐나다의 교육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저마다의 ‘모양’대로 존중받았습니다.
숫자에 약하면 계산기를 쓰면 되고, 글쓰기가 힘들면 그림으로 표현하면 됩니다.
부족함은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조건’일 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본 것은,
부모가 아이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내려놓을 때
비로소 아이의 숨겨진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는 마법 같은 변화였습니다.
부모님들께 감히 권해봅니다.
아이를 완성해야 할 ‘과업’으로 보지 말아 주세요.
아이는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온전한 우주입니다.
부모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아이에게 주사기를 대거나 약을 건네는 대신,
오늘 밤엔 아이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봐 주세요.
"네가 어떤 모습이든, 나는 네가 내 아이라서 참 행복해."
이 한마디가 그 어떤 명약보다 아이의 마음을 건강하게 치유할 것입니다.
아이의 이상 행동을 고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부모가 먼저 '완벽'이라는 이름의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의 '지금 모습'을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