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부모라는 프레임이 만든 ‘죄책감’이라는 그림자

"미안하다는 말 대신, 함께 행복하자는 고백"


우리는 늘 '함께'라는 프레임 안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믿었습니다. 그 반듯한 테두리 밖의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죠."


언제부터였을까요.

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보다 내가 지키지 못한 사소한 약속들이 더 크게 들리기 시작한 것은.

'좋은 부모'라는 반듯한 프레임 안에 나를 억지로 가둬둘수록,

내 등 뒤로 드리워진 죄책감의 그림자는 날이 갈수록 짙어만 갔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좋은 부모'의 기준은 참으로 견고합니다.

아이의 감정을 다 받아주는 너그러운 인내심, 유기농 식단으로 채워진 식탁,

그리고 주말마다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들.

나는 그 정답지 같은 프레임에 나를 끼워 맞추기 위해 매일같이 스스로를 검열하곤 했습니다.

조금만 큰 소리를 내도, 피곤해서 아이의 놀이 요청을 거절해도

금세 '미안함'이라는 불청객이 마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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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사이이면서도 때로는 가장 먼 타인처럼, 부모라는 무거운 어깨 너머로 서로의 진심을 비껴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그 완벽한 프레임 속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동안,

정작 내 아이가 보고 있는 것은 나의 '희생'이 아니라 나의 '그늘'이었다는 것을.

죄책감에 짓눌린 부모의 얼굴에서 아이는 사랑 대신 불안을 먼저 읽어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완벽하게 설계된 일상이 아니라,

곁에 있는 부모의 편안한 미소라는 당연한 진리를 왜 잊고 살았을까.


내가 나를 먼저 돌보지 못해 에너지가 바닥나면,

사랑조차 어느덧 버거운 '의무'가 되어버렸습니다.

미안함이 커질수록 아이를 향한 순수한 애정의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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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고 척박한 '현실'이라는 틈새에서도, '나'라는 꽃은 기어이 피어나 빛을 향해야 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이자,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생명력입니다.


이제 나는 내 등 뒤에 길게 늘어진 죄책감의 그림자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이 그림자는 내가 나쁜 부모라서 생긴 것이 아니라,

아이를 너무나 사랑해서 생긴 흔적임을 이제는 압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무거운 그림자 밖으로 한 걸음 걸어 나오기로 했습니다.

완벽한 부모라는 허상을 부수고, 조금은 서툴러도 행복한 '나'로 서기로 결심 합니다.

내가 행복해야 내 아이도 행복의 결을 배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오늘 밤, 잠든 아이의 머리맡에서 "미안해"라는 고백 대신 나지막이 이 말을 건네보려 합니다.

"사랑해. 그리고 오늘도 우리, 참 잘 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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