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나에게 건네는 뒤늦은 인사
아이의 서툰 선들 사이에서, 잊고 있었던 나의 진짜 표정을 발견했습니다.
아이가 스케치북을 펼치고 삐뚤빼뚤한 선을 긋기 시작할 때,
저는 대개 그 옆에서 빨래를 개거나 밀린 설거지거리를 떠올리곤 했어요.
부모가 된 이후 제 시간은 언제나 '효율'이라는 잣대에 매여 있었거든요.
아이가 노는 시간은 제가 집안일을 해치워야 하는 시간이었고,
아이가 잠든 시간은 내일을 버티기 위해 잠을 보충해야 하는 비축의 시간이었죠.
'나'라는 존재는 그 빽빽한 스케줄 사이사이에 아주 얇은 종잇장처럼 끼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엄마(아빠), 이것 좀 봐요! 내가 그린 거예요."
아이가 내민 스케치북 속에는 커다란 안경을 쓴 사람이 서 있었어요.
입가는 발갛게 번져 있고, 손에는 정체 모를 무언가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죠.
"우와, 우리 아이가 엄마를 정말 멋지게 그려줬네!"
저는 습관처럼 영혼 없는 칭찬을 먼저 내뱉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대답이 제 마음을 툭 건드리더라고요.
"아니요, 이건 엄마(아빠)가 아니라, '노래하는 사람'이에요.
아까 노래 흥얼거릴 때 진짜 행복해 보였거든요."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어요.
아이의 눈에는 제가 밥을 차려주는 사람이나 잔소리를 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무언가를 좋아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어떤 사람'으로 보였던 거예요.
부모라는 두꺼운 외투를 껴입느라
정작 그 안에서 숨 쉬고 있는 나의 본모습을 잊고 살았던 건 아이가 아니라,
바로 저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부모가 되는 순간, 스스로를 거대한 역할 속에 가두곤 하죠.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종종 우리가 무엇을 할 때 웃음이 나는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어떤 꿈을 품었었는지를 잊게 만들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참 영민해요.
제가 의무감으로 웃고 있는지,
아니면 정말로 내 안의 무언가가 즐거워서 빛나고 있는지를 귀신같이 알아채거든요.
아이의 스케치북 속 '노래하는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서툰 그림 안에는 부모라는 책임감에 짓눌린 고단한 표정 대신,
찰나의 자유를 만끽하는 한 개인의 생동감이 담겨 있었어요.
어쩌면 아이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완벽한 헌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자기만의 노래를 부를 줄 아는 '행복한 어른'의 뒷모습을 보고 싶은 게 아닐까요.
오늘 밤, 아이를 재우고 난 뒤 거울 앞에 가만히 서 봅니다.
거울 속에는 누군가의 부모인 제가 서 있지만,
그 눈동자 깊은 곳에는 여전히 못다 부른 노래를 간직한 소녀가 살고 있어요.
저는 이제 그 아이를 모른 척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부모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진짜 나'를 찾는 여정은 사실 대단한 게 아니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다시 찾아 듣고, 아이에게 나의 취향을 조심스레 공유하며,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아주 조금씩 늘려가는 것.
그것이 결국 아이에게도 더 넓고 깊은 세상을 보여주는 가장 다정한 길임을 이제는 믿어보려 합니다.
내일은 아이와 함께 노래를 불러야겠습니다.
부모로서가 아니라, 노래를 참 좋아하는 '나'라는 사람으로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