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부모보다 행복한 사람이고 싶어서

거울 속의 나에게 건네는 뒤늦은 인사

아이의 서툰 선들 사이에서, 잊고 있었던 나의 진짜 표정을 발견했습니다.


아이가 스케치북을 펼치고 삐뚤빼뚤한 선을 긋기 시작할 때,

저는 대개 그 옆에서 빨래를 개거나 밀린 설거지거리를 떠올리곤 했어요.

부모가 된 이후 제 시간은 언제나 '효율'이라는 잣대에 매여 있었거든요.

아이가 노는 시간은 제가 집안일을 해치워야 하는 시간이었고,

아이가 잠든 시간은 내일을 버티기 위해 잠을 보충해야 하는 비축의 시간이었죠.

'나'라는 존재는 그 빽빽한 스케줄 사이사이에 아주 얇은 종잇장처럼 끼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엄마(아빠), 이것 좀 봐요! 내가 그린 거예요."

아이가 내민 스케치북 속에는 커다란 안경을 쓴 사람이 서 있었어요.

입가는 발갛게 번져 있고, 손에는 정체 모를 무언가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죠.

"우와, 우리 아이가 엄마를 정말 멋지게 그려줬네!"

저는 습관처럼 영혼 없는 칭찬을 먼저 내뱉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대답이 제 마음을 툭 건드리더라고요.

"아니요, 이건 엄마(아빠)가 아니라, '노래하는 사람'이에요.

아까 노래 흥얼거릴 때 진짜 행복해 보였거든요."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어요.

아이의 눈에는 제가 밥을 차려주는 사람이나 잔소리를 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무언가를 좋아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어떤 사람'으로 보였던 거예요.

부모라는 두꺼운 외투를 껴입느라

정작 그 안에서 숨 쉬고 있는 나의 본모습을 잊고 살았던 건 아이가 아니라,

바로 저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pexels-onorblog-16949480.jpg 거울 속의 나에게 건네는 뒤늦은 인사. 이제야 비로소 당신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봅니다.


우리는 부모가 되는 순간, 스스로를 거대한 역할 속에 가두곤 하죠.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종종 우리가 무엇을 할 때 웃음이 나는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어떤 꿈을 품었었는지를 잊게 만들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참 영민해요.

제가 의무감으로 웃고 있는지,

아니면 정말로 내 안의 무언가가 즐거워서 빛나고 있는지를 귀신같이 알아채거든요.


아이의 스케치북 속 '노래하는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서툰 그림 안에는 부모라는 책임감에 짓눌린 고단한 표정 대신,

찰나의 자유를 만끽하는 한 개인의 생동감이 담겨 있었어요.

어쩌면 아이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완벽한 헌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자기만의 노래를 부를 줄 아는 '행복한 어른'의 뒷모습을 보고 싶은 게 아닐까요.


pexels-czapp-arpad-3647289-11977169.jpg 완벽한 부모라는 역할보다, 스스로 행복한 한 사람으로 당신 곁에 서고 싶어요.


오늘 밤, 아이를 재우고 난 뒤 거울 앞에 가만히 서 봅니다.

거울 속에는 누군가의 부모인 제가 서 있지만,

그 눈동자 깊은 곳에는 여전히 못다 부른 노래를 간직한 소녀가 살고 있어요.

저는 이제 그 아이를 모른 척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부모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진짜 나'를 찾는 여정은 사실 대단한 게 아니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다시 찾아 듣고, 아이에게 나의 취향을 조심스레 공유하며,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아주 조금씩 늘려가는 것.

그것이 결국 아이에게도 더 넓고 깊은 세상을 보여주는 가장 다정한 길임을 이제는 믿어보려 합니다.

내일은 아이와 함께 노래를 불러야겠습니다.

부모로서가 아니라, 노래를 참 좋아하는 '나'라는 사람으로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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