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지기 친구와 함께한, 조금 느린 생일 여행 기록

기암괴석 같은 삶을 풍경이라 불러줄 한 사람

서른 해를 건너, 우리는 다시 나란히 섰다.
설악의 웅장함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던 건,
서로의 어깨를 기댈 수 있는 우리가 함께였기 때문이리라.



우정이라는 이름의 완만한 능선


살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의 결이 읽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30년.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다는 그 긴 시간 동안 내 삶의 굴곡을 묵묵히 지켜봐 준 친구와 함께

설악산으로 향했습니다.

특수교사로, 상담사로, 누군가의 아픔을 받아내느라 정작 내 마음의 빗장은 채 걸어 잠그지 못했던 시간들.

친구는 그 틈을 용케 알아채고 '여행'이라는 다정한 처방전을 건넸습니다.


KakaoTalk_20260325_083404406_05.jpg


깎아지른 절벽, 그 거친 틈바구니에 뿌리를 내린 강인한 생명력. 모난 구석과 깎인 상처들이 모여 비로소 독보적인 풍경이 된다는 것을, 설악은 말없이 가르쳐주었다.


설악이 가르쳐준 기암괴석의 삶


권금성으로 오르는 케이블카 안에서 발아래 펼쳐진 기암괴석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매끈하고 고운 돌보다는 거칠고 투박하게 깎인 바위들이 설악을 더 설악답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연도 이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마다의 모난 구석과 깎인 상처들이 모여 결국은 독보적인 풍경이 된다는 것.

척박한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처럼,

우리도 각자의 풍파를 견디며 자신만의 정상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겠지요.

친구의 손을 잡고 10분 남짓 돌길을 오르며,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삶이라는 산맥을 응원했습니다.


seoraksan-ulsanbawi-view-cafe-ambrosia.jpg.jpg 거대한 울산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진 창가. 그 압도적인 풍경마저 친구가 내민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온기를 이기진 못했다. 잊지 못할, 30년 친구와의 생일 잔치.


울산바위 앞에서 나눈 생일의 잔치


소노펠리체 델피노의 창가, 병풍처럼 펼쳐진 울산바위는 압도적이었습니다.

그 거대한 자연 앞에서 친구가 내민 작은 케이크와 커피 한 잔.

30년 전 처음 만났던 풋풋한 시절의 우리가 지금의 우리에게 건네는 인사인 것만 같았습니다.

친구가 나중에 가족과 꼭 다시 오라며 꼼꼼히 일러주던 숙소 예약 노하우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부재한 시간에도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지극히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이었지요.

헬리콥터를 타고 내려오며 들었던 수많은 생각의 조각들은

결국 '감사함'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수렴되었습니다.


seoraksan-restaurant-food-hwangtae-jjim.jpg.jpg AI가 속삭여준 고소한 순두부와 매콤한 황태찜의 미학.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지만, 그 허기진 마음을 든든하게 채워준 것은 결국 사람의 온기가 담긴 음식이었다.


에필로그: 다시, 따뜻한 세상으로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지요.

왕복 4시간의 운전 끝에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제 안에는 설악의 서늘한 바람과 친구의 온기가 든든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3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걸어올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충분히 부유한 사람입니다.

오늘 밤, 제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곁에는 당신의 기암괴석 같은 삶을 '풍경'이라 불러줄 누군가가 있나요?


#우정여행 #설악산 #생일 #에세이 #중년의쉼표 #이가원의힐링저널 #상담사의일기

작가의 이전글타인의 마음을 돌보느라 내 마음을 잊은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