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30분. 한참 꿈나라에서 언니 품의 온기를 느끼며 자고 있었어요. 그런데 언니가 저를 살짝 흔들더니 말했어요.
“바람아, 우리 제주도 가자.” 제주도?
순간 귀가 쫑긋 섰어요. 산책? 아니면 여행? 그런데 언니가 덧붙였어요.
“한 달 동안!” 한 달이라니!
잠이 확 깨버렸어요. 조금 놀랐지만, 마음 한 켠이 두근두근 뛰었어요. 언니랑 한 달 내내 함께라니... 그건 생각만으로도 너무 좋은 일이었거든요. 언니는 짐을 옮기느라 다섯 번이나 주차장과 집을 오갔어요. 그 모습을 창문 너머로 지켜보며, 저는 엉덩이를 살짝 흔들었어요.
‘역시 내 언니야. 추진력 하나는 최고야.’
마지막으로 저를 차에 태우자, 엔진이 켜지고 낯선 여정이 시작됐어요.
언니는 졸음을 쫓으려고 편의점에서 커피랑 에너지드링크를 샀어요.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더 시끄러운 힙합 음악을 틀었죠. 예전엔 클래식만 들었는데, 요즘은 자꾸 흥얼거리는 언니예요. 처음엔 낯설었지만, 언니의 어깨가 리듬에 맞춰 흔들리는 걸 보니 귀여워서 그냥 존중하기로 했어요.
차창에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이내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죠. 사실, 예전엔 비가 무서웠어요. 차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가 제겐 천둥처럼 크게 들렸거든요. 하지만 언니가 말해줬어요.
“바람아, 이건 자연의 숨소리야. 괜찮아.”
그 말을 들은 뒤로 저는 빗소리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오늘처럼 차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언니 옆에 있는 이 시간은 오히려 포근했답니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하늘이 밝아질 즈음 목포에 도착했어요. 새벽 공기가 차가웠지만, 언니의 손길은 따뜻했어요. 차를 배에 싣고, 제 캐리어 손잡이를 꼭 쥔 언니의 뒷모습은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웠어요.
‘그래, 제주도에서는 분명 멋진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렇게 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어요.
아침 9시, 드디어 배가 출항했어요. 하지만 저는 14kg이라 객실에 함께 들어갈 수 없었어요.
‘소형견만 가능하다니, 참 억울해!’
그래도 언니는 강아지 보관실까지 함께 들어와 제 곁을 지켜줬어요. 작은 의자 몇 개, 켄넬이 열 줄로 놓인 좁은 공간이었지만, 언니가 옆에 있어서 하나도 외롭지 않았어요. 거센 파도로 배가 심하게 흔들릴 때마다 언니는 제 이름을 불러줬어요. 그 목소리를 들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라앉았어요. 그렇게 흔들림 속에서도 서로를 믿으며, 우리는 제주로 향했어요.
오후 3시.
긴 여정을 끝내고 도착한 곳은 베짱이마씸이라는 쉐어하우스. 문 앞에 내리자마자 불어오는 제주 바람이 코끝을 간질였어요.
‘그래, 이제 진짜 제주다.’
이제부터 한 달 동안, 어떤 날들이 펼쳐질까?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언니랑 함께라면, 뭐든 다 좋을 것 같았어요.
차가 멈추자 창문 너머로 짭조름한 바람 냄새가 밀려왔어요. 여기가 바로 제주도구나
언니는 ‘베짱이마씸’이라는 이름의 쉐어하우스를 가리키며 웃었어요.
“여기가 우리가 한 달 동안 머물 집이야.”
그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낯선 땅이지만, 왠지 금세 내 집이 될 것 같은 따뜻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문을 열자마자 제주 냄새가 확 퍼졌어요. 나무 바닥의 햇살 냄새와 고양이 털 냄새가 살짝 섞여 있었어요. 낯선 냄새였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안정됐어요.
이 집에는 신혼부부와 골든리트리버 한 마리,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 있었어요. 부부는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반겨줬어요.
“아이고, 귀엽다! 조그맣네!”
조그맣다고요? 저, 조그맣지 않은데요…
하지만 옆에 서 있는 골든리트리버 오빠를 보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어요. 정말 크고, 따뜻한 냄새가 나는 오빠였어요. 그 옆에는 조용히 꼬리를 말고 앉아 있는 고양이들이 있었는데, 그 눈빛이 마치 ‘새로운 손님이네...’ 하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언니는 신혼부부에게 인사를 하며 이리저리 짐을 풀었고, 저는 집안을 살금살금 돌아다니며 구석구석 냄새를 맡았어요. 창문 틈새로 바람이 들어오는데, 그 안에 바다 냄새가 실려 있었어요. 서울에서는 맡아본 적 없는, 조금 짭짤하고, 약간 달큰한 냄새였어요. 그걸 코 끝 깊숙이 들이마시니 몸이 느긋해졌어요.
이곳은 송악산 근처 모슬포라는 마을이라고 해요. 멀리 바다가 보이고, 뒷산에는 나무들이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어요. 언니는 바다도 좋고, 산도 좋다며 매일 산책하자고 약속했어요.
‘정말이지? 매일?’
그 말이 너무 반가워서 엉덩이를 흔들었어요. 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그래, 진짜야. 우리 매일 같이 나가자.”
그 말에 마음이 포근하게 녹아들었어요. 언니는 또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어요.
“바람아, 우리 제주 일상을 유튜브에 올려볼까?”
그 말에 귀가 쫑긋 섰어요. 유튜브라니, 또 뭔가 시작하는구나. 언니가 뭔가를 시작할 때면, 항상 진지해지지만 금세 산만해지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조금 걱정됐어요.
‘이번엔 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곧 생각을 바꿨어요.
‘그래도 괜찮아. 언니는 결국 해내는 사람이니까.’
창가에 앉아 바람을 맡았어요. 멀리서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부엌에서 들려오는 신혼부부의 웃음소리. 모든게 평화로웠어요. 세상이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었어요. 이제야 알겠어요. 이게 바로 제주에서의 평온함이구나. 언니랑 나, 그리고 새 친구들과 함께하는 한 달이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느긋하고, 행복한 시간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