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재테크 관련 가장 유명한 책을 꼽으라고 한다면 '네 개의 통장'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때는 나 역시 고객들에게 많이 선물을 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선물보다 '네 개의 통장'을 선물했던 이유는 크게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고객에게 책을 선물함으로써 나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네 개의 통장을 읽은 고객은 영업이 쉬웠기 때문이다.
책을 한번 읽은 고객에게는 내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책 속에 내가 할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기 때문에 고객을 다시 만났을 때 쉽게 변액보험을 가입했다. 그 당시 거의 모든 보험설계사나 재무설계사들이 비과세와 높은 수익률을 앞세워 변액보험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이기도 했다.
네 개의 통장에는 통장의 사용처를 정해 통장을 나누고 통장 각각의 역할을 분담하여 가정의 재무관리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와 함께 당시 유행했던 방법이 '통장 나누기'이다.
'통장 나누기'란?
재무목표와 기간에 맞춰 통장에 이름을 붙이고 통장을 나누는 것을 말한다. 각각의 통장에는 결혼자금 통장, 주택마련 통장, 자녀 학자금 통장, 노후자금 통장 등의 이름을 붙여 분산해서 저축/투자를 하는 것이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또한, 재무목표와 기간에 따라 금융상품 가입하는데,
단기자금은 위험을 최소화하고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은행의 예적금이나 CMA
중기자금(3년 이상)은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증권사의 펀드
장기자금(10년 이상)은 수익성과 비과세를 대비한 보험사의 변액보험이나 저축보험
으로, 모든 고객이 동일한 틀 안에서 회사만 달라질 뿐 금융상품을 가입하는 방식으로 같았다.
가로 저축과 세로 저축
가로 저축과 세로 저축도 통장나누기와 비슷한 방법이지만 이유는 조금 달랐다.
과거에는 위 그림에 나와 있듯이 세로 저축의 방법으로 저축을 해도 고금리와 고성장의 이유로 자산운용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현재는 평균수명의 연장, 저금리, 저성장 등으로 사회적, 경제적 환경이 변하여, 가로 저축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 방법 역시 통장나누기와 같이 재무목표와 기간에 따라 금융상품을 나누었는데 재무목표 기간에 따라 가입하는 상품의 종류는 대동소이했다.
위의 자료는 내가 예전에 고객과 상담을 하거나 강의를 할 때 사용하던 자료를 가져왔다.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재무목표와 투자기간, 수익률이 동일한 상황에서 A와 B 방식 둘 중 한 가지 방법 선택하라고 한다면, 백이면 백 모두가 B의 방식을 선택할 것이다. 내가 자료를 만들 때도 당연히 B를 선택하도록 결과는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자료를 만들긴 했다.
하지만 위의 자료에는 한 가지 중요한 오류가 있다.
바로 주택구입 시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만약 A와 B의 조건으로 주택구입 시기까지 10년으로 동일하게 맞춘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결과는 은퇴시기에 동일하게 21억의 자산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주택구입 시기를 13년으로 동일하게 한다고 해도 결과는 동일하다.
왜? 저런 자료가 만들어졌을까?
결론은 금융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고객에게 장기투자를 유도해 변액보험이나 연금보험 등의 보험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현재도 보험설계사와 재무설계사의 주 소득원은 보험상품 판매에 대한 수수료가 주된 소득원이다. 때문에 고객에게 장기투자가 효율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장기투자에 맞는 보험상품을 권유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답정너,,, 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너는 사인이나 하면 된다는 식이다. 물론 모든 선택은 고객이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결코 올바른 방법은 아니었지 싶다.
대부분의 고객들이 예금 적금, 펀드, 연금, 변액 등 다양한 상품을 나누어 가입한다. 다양한 금융상품을 가입하는 것은 고객이 분산투자를 하고 있다는 착각과 미래의 재무목표를 모두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게 만들어 심리적인 안정감을 갖게 한다. 하지만, 실제 이러한 심리적 안정감은 자산관리에 긴장감이 풀릴 수 있어 도움이 되지 않는다.
'통장 나누기'와 '가로 저축과 세로 저축'은 금융기관에서 금융상품 판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꼼수이지, 진정한 의미의 분산투자도, 효율적인 저축 방법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