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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르씨 Dec 07. 2023

장마의 시작

D+333일. 뭔가 상징적이다.

우리 가족이 긴 장마를 마주한 지 벌써 333일째. 예상치 못한 소나기로 시작해서 장마로 이어졌고, 꽤나 길었던 장마가 우산 끝에서 뚝 뚝 맺어지며 조금씩 그쳐가듯 희망이 생기는 날이기도 하다.


참 맥락 없이 시작한 문장일 수 있는데, 아무래도

주어가 자꾸 빠지는 이유는 -글 솜씨가 없기도 하지만- 차마 내 손으로 적기 주저되고, 표현하기 싫고, 곱씹기 싫고, 되뇌기 싫고, 감히 즐겁게 써 내려갈 자신이 없고, 용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한 이유.


우리의 하나뿐인 예쁜 아가는 작년에 태어난 지 사흘 뒤 우측 편측 중고도 난청 판정을 받았다.

아직도 그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무슨 소리인가 싶어 '이 간호사가 뭐라는 거야?' 하고 속으로 코웃음을 치고 눈물도 나지 않았다. 믿지 않았기 때문이고, 대학병원에서 정상판정으로 번복되는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 하지만, 그 확률을 무시하고 대학병원 정밀검사 이후 확정을 받았다.

유전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단 한 번도 예상치 못한 청천벽력이었다.


아기 때부터 평생 보청기를 끼어야 한다는 이야기에 한 두 달을 눈물로 보냈는데, 하지만 이 때는 몰랐다. 우리에게 닥칠 시련의 5%도 아니라는 것을.


4개월이 되었을 무렵, 우리 아기는 영아연축이라는 희귀 난치병 진단을 받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빨리 발견이 힘들었을 텐데, 요즘 세상의 온라인 정보망은 참 대단해서 맘카페를 활용해 초보 엄마들은 개월 수마다 미리 예습을 할 수 있는데, 나 역시 간간이 나타나는 난치병 사례를 나도 모르게 학습하고 있었고, 늦은 봄 어느 날. 글로만 스쳐본 그 증상이 우리 아기에게서 목격되었다.



영아연축

영아기에 발생하는 발작, 소아 뇌전증의 하나. 출생아 중 십만 명당 24명~42명의 유병율. 환자의 25%에서 생후 1년 내 영아연축 발작이 시작되고, 생후 3~8개월 사이에 발생. 잠에서 깰 때나 잠들 때 몸이 연축 되는 증상이 반복되는 발작.


발작이 1회 발현될 때마다 뇌 손상의 후유증으로 발달이 지연된다.



"엄마는 강하다"라는 표현을 내가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모든 도치맘들이 그렇듯, 우리 아기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데, 절망적인 상황에 갇혀 아기를 어둡게 키울 수는 없어서 용기를 내어 희망과 긍정을 가지고 우리의 예쁘고 눈부신 기록, 남기기 위해 솜씨 없고 투박한 글을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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