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글방(10/11) : 산책
장면이 바뀌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걷는 만큼, 향하는 방향에 따라 길의 모습은 달라진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걸어도 매일 다른 것을 본다. 나뭇잎의 색이 짙어지기도 하고,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마른다. 어제는 피어있던 꽃이 오늘은 시들어 있고, 어제는 보지 못했던 또 다른 꽃봉오리가 움트고 있다.
바뀌는 장면이 아쉬울 때도 있다. ‘제법 지저분해졌군.’ 하며 흐뭇했던 것도 잠시, 그들 나름의 법칙으로 우거지던 수풀이 갑자기 정돈되어 버릴 때. 가로수가 되어달라는 요구에 충실히 응하던 나무의 가지가 아무렇게나 잘려있을 때.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바뀌지 않는 장면에 화가 나다 못해 무력해질 때도 있다. 드넓은 쓰레기통이 된 관리를 하지 않는 사유지들. 어디에나 버려져 있는 담배꽁초. 막혀버린 빗물받이. 매일 산책을 하면서 지나치는 같은 곳에 대해 반복해서 신고한 적이 있다. 동사무소의 청소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개인 핸드폰 번호를 알려줄 테니, 신고하지 말고 본인에게 그냥 연락해달라고.
걸음걸음에 생각을 흘려보내고 다가오는 장면을 눈에 담는다. 오늘만 볼 수 있는 귀한 것. 오늘까지만 봤으면 하는 싫은 것. 그 모든 것이 담겨있는 장면 속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