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피성 Jun 22. 2022

마크 브로갑, '짙은 구름, 더 깊은 긍휼'

짙은 구름, 더 깊은 긍휼

솔직하게 '애통함'과 '긍휼'은 잘 연결되지 않는다. 애통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는 것은 긍휼함을 벗어난 것의 결과인 것만 같고, 애통함 이후에 긍휼이 임해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실제로 그렇게 기대하며 살아왔으니 말이다. 


마크 브로갑은 '우는 것'과 '애통하는 것'을 구분한다. 신선한 구분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독교인에게는 너무 당연한 구분이라는 것에도 동의가 된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우는 것은 인간적이나, 애통하는 것은 기독교적이다. 이 책의 출발점은 여기다


단순히 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우는 것(cry, weep)과 애통(lament)해 함을 구분하는 것이 명확히 구분이 되는가에 대한 의심보다는 구분하는 것에 대한 큰 유익과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해진다. 



점점 더 적대적으로 치닫는 이 망가진 세상에서 기독교가 이 단조의 노래를 무시하면 
극히 불균형적이고 제한된 소망만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애통이라는 옛 관행, 그리고 거기서 오는 은혜를 회복해야만 한다. 
애통이 빠지면 기독교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마크 브로갑, 짙은 구름 더 깊은 긍휼, 두란노, p.38





성경에서는 의외로 애통하는 장면이 많다. 희락의 인물들도 대게 애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모세, 야곱, 요셉, 다윗, 욥, 다니엘 등등. 그저 슬픔을 간직한 것이 아니라 애통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저자는 애통하라는 당위적인 제안을 한다. 그 이유는 애통은 상심에서 소망으로 가는 길이고, 믿음의 행위이면서,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행위라고 말한다. 결국 애통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고, 겸손하고 의지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믿음의 태도이기 때문에 원래 애통함은 당연한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책의 부제를 적어본다면, '애통하라!'가 어울릴 것 같다



하지만, 애통은 다르다. 
성경적이고 솔직하고 구속적인 애통은 우리에게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모든 애통은 기도이기 때문이다. 애통은 믿음의 고백이다.
애통은 고통과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약속이라는 사실과 씨름하는 상한 심령의 솔직한 울부짖음이다. 
마크 브로갑, 짙은 구름 더 깊은 긍휼, 두란노, p.43



저자의 애통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방법, 목적은 제1부를 통해 알 수 있다. 애통이 소망으로 가는 길이고,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행위라는 것에서 시작하여 애통의 첫 단계는 불평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불평은 하나님을 처절하게 신뢰하는 겸손한 마음에서 나오는 불평이다. 그다음에는 담대하게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바로 믿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애통의 시작이 불평이나 마지막은 믿음이다




저자가 말하는 애통의 단계들을 보면, 쉽게 눈치챌 수 있는 것처럼, 이 모든 과정이 '기도'라는 사실이다. 독서를 하고 보니, 결국에는 '애통=기도'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애통할 수 있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기도하는 사람이야말로 제대로 애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애통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드리는 믿음의 기도다. 
이 마음가짐의 변화를 배우기 바란다. 
예레미야애가는 소망이 상황의 변화에서 오지 않는다는 점을 알려 준다. 
소망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이미 알고 있는 진리를 붙들 때 찾아온다. 
다시 말해, 우리는 보이거나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으로 고난을 뚫고 나간다. 
마크 브로갑, 짙은 구름 더 깊은 긍휼, 두란노, p.162





2부에 이르러서는 슬픔의 책 예레미야애가를 다룬다. 애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은 슬픔으로 시작해 소망으로 끝난다는 간단한 개요 정도는 기억할 것이다. 처절한 슬픔 앞에 직면해 있는 예레미야는 애통해 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슬픔이고, 애통이다. 희망을 바랄 수도 없을 것만 같은 폐허처럼 황량한 애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담대히 소망한다. 이스라엘 민족을 버려두시지 않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회복하실 그 소망을 품는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고통의 중심에는 적의 승리가 있다(p.138)는 점이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목적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크고 작은 다양한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와중에 고통이 다가올 때면,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우리의 시야는 적의 승리에 머무른다.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저자는 애통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시각에 조율시키는 방법 중 하나(p.151)임을 상기시켜 준다. 하나님은 적의 승리보다, 우리의 고통보다, 더 크신 분임을 또한 상기시켜 준다. 그래서 소망이 필요하다. 



크리스천의 삶에는 개인적인 애통이 있어야 한다. 
애통 중에 우리를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자신을 열게 되기 때문이다. 
삶은 슬픔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애통을 영적 여행의 일부로 삶을 기회가 너무도 많다.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다.
마크 브로갑, 짙은 구름 더 깊은 긍휼, 두란노, p.233



제3부에 이르면 애통을 가지며 살아가는 삶에 적용하기 위한 개인과 공동체에게의 당부를 만난다.  저자는 3부를 시작하면서 애통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되짚어 준다.(p.231, 애통은 상실의 언어다. 애통은 침묵에 대한 해법이다. 애통은 불평을 토로할 수 있게 해 준다. 애통은 감정을 올바로 표현하기 위한 틀이 되어 준다. 애통은 고통을 다루기 위한 긴 과정이다. 애통은 예배의 한 방법이다.) 


동시에 애통의 구체적인 방식으로 안내한다. 애통을 찾는 눈으로 성경을 읽고, 인생의 모든 순간 애통하고, 애통하며 기도함으로 미움을 극복하고, 죄의 민감성을 기르고, 홀로 외로워하는 법을 배우라고 조언한다. 아울러 이러한 애통의 방식을 공동체에 적용하라고도 권면한다. 공동체로 부르신 하나님이 공동체의 애통을 통해 공동체가 변화되는 과정으로 인도하신다. 


책의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 제목 '깊은 애통, 더 깊은 긍휼'에서처럼 애통 이후의 긍휼을 기대하며 읽어온 독자들에게 '더 깊은' 긍휼은 어떻게 이해될까 생각해 본다. 실제 책에는 긍휼, 깊든지 깊지 않던지 실질적인 긍휼은 언급되지 않는다. 예레미야애가 내용처럼 살아생전 반전을 보지 못하고 하늘나라에 가는 수많은 애통하는 크리스천들이 실제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책에는 긍휼은 생략된 것일까.


하지만, 저자는 처음부터 애통과 긍휼을 함께 이야기했다. 믿는 우리에게 지극한 선이란, 완전한 긍휼이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닌가. 애통은 하나님께 나아가게 한다. 애통으로 예배하게 되고, 기도하게 된다. 결국은 애통과 동시에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된다. 애통이 긍휼의 지극한 도구임을 우리는 결국 깨닫게 된다.


자, 애통하자.



계속해서 애통하기를 바란다. 검은 구름 속에 깊은 긍휼이 있다. 
애통의 은혜를 발견하면 그 긍휼이 임한다.
마크 브로갑, 짙은 구름 더 깊은 긍휼, 두란노, p.280



점점 더 적대적으로 치닫는 이 망가진 세상에서 기독교가 이 단조의 노래를 무시하면 극히 불균형적이고 제한된 소망만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애통이라는 옛 관행, 그리고 거기서 오는 은혜를 회복해야만 한다. 애통이 빠지면 기독교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p.38


하지만, 애통은 다르다. 성경적이고 솔직하고 구속적인 애통은 우리에게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모든 애통은 기도이기 때문이다. 애통은 믿음의 고백이다. 애통은 고통과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약속이라는 사실과 씨름하는 상한 심령의 솔직한 울부짖음이다. 

p.43


애통은 고통에서 약속으로 변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애통은 상심에서 소망으로 가는 통로다. 

p.47


고통 중의 기도는 비록 의심과 의문이 가득하여도, 분명한 믿음의 행위다. 이는 우리 마음을 하나님을 향해 여는 것이다. 애통의 기도는 침묵보다 낫다. 하지만 내가 볼 때 많은 사람이 애통을 두려워하고 있다. 애통이 너무 노골적이고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애통보다 훨씬 더 나쁜 것은 조용한 절망이다. 

p.53


애통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드리는 믿음의 기도다. 이 마음가짐의 변화를 배우기 바란다. 예레미야애가는 소망이 상황의 변화에서 오지 않는다는 점을 알려 준다. 소망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이미 알고 있는 진리를 붙들 때 찾아온다. 다시 말해, 우리는 보이거나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으로 고난을 뚫고 나간다. 

p.162


크리스천의 삶에는 개인적인 애통이 있어야 한다. 애통 중에 우리를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자신을 열게 되기 때문이다.

삶은 슬픔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애통을 영적 여행의 일부로 삶을 기회가 너무도 많다.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다.

p.233


계속해서 애통하기를 바란다. 검은 구름 속에 깊은 긍휼이 있다. 애통의 은혜를 발견하면 그 긍휼이 임한다.

p.280




#짙은구름더깊은긍휼 #마크브로갑 #두란노 #독서 #신앙서적




매거진의 이전글 로완 윌리엄스, '인간이 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