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없는 선택을 합시다
출산을 앞둔 산모들은 결정해야 할 문제들이 정말 많다.
젖병브랜드를 고르는 일부터 평생을 불릴 아기이름 정하는 일까지.
그중 내가 가장 결정하기 어려운 선택은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중 어떤 방식으로 아기를 낳을지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일부 산모는 자연분만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이 제왕절개를 해야만 하는 경우도 많다.)
운이 좋게도 나는 자연분만 선택이 가능한 산모였기때문에
자연분만과 제왕절개의 장단점을 끊임없이 찾아보고 경험자들의 조언을 들으며 어제는 자연분만, 오늘은 제왕절개로 갈팡질팡했다.
나는 약 5년 전 난소의 혹으로 인해 복강경 수술을 한 경험이 있다.
배꼽을 약 3~4센티 절개를 한 수술이었고,
복강경 수술은 다음날이면 퇴원해서 일상생활 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간단한 수술이라 했었으나,
나는 수술 이후 완전히 내 몸의 컨디션으로 회복하는데 약 한 달여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게다가 지금도 컨디션이 안 좋을라치면 배꼽 주변이 찌르르하게 아파오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고작 3센티의 절개가 이러할 진데, 하물며 제왕절개 수술은...!
복강경 수술의 경험이 없었다면 제왕절개를 선택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작은 제왕절개'의 경험이 있었기에 결국 자연분만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유튜브에 '자연분만 브이로그'를 검색해서 올라온 대부분의 영상을 본 듯하다.
누군가는 무통주사가 잘 들어서 낳을 때까지 별로 큰 어려움 없이 낳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20시간이 넘는 진통을 견뎌가며 눈물콧물 쏙 빼는 극한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어떤 케이스일까. 설레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무섭기도 했다.
35주가 넘어가며 주마다 산부인과를 방문했고 담당 선생님은 자연분만을 위해 많이 걷고 계단도 타라고 조언하셨다.
많이 걸었다. 12월... 한파가 찾아온 날에도 걷고 또 걸었다.
나는 8층에 살지만 아파트 꼭대기는 22층이기에 어떤 날은 22층까지 계단 타고 오른 적도 있다.
근데... 아가는 도통 내려올 생각을 안 했다...
누군가 그랬다. 자연분만은 내 골반, 자궁, 아가의 의지, 타이밍 등 모든 합이 다 맞아야만 성공할 수 있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우리 엄마도 자연분만으로 날 낳았고, 내 동생도 자연분만으로 조카를 낳았기 때문에,
내가 자연분만으로 낳겠어! 하는 의지만 있다면 낳을 수 있는 건 줄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39주 6일을 꽉 채웠을 때까지도 이 어린 녀석은 내려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담당 선생님은 유도분만을 제안하셨고 결국 나는 39주 6일 만에 유도분만, 그리고 끝내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제왕절개로 마무리하게 되는 엔딩을 맞이했다. (유도분만으로 자연분만에 성공하는 산모들도 많다!)
현재 대부분의 산부인과 의사들은 40주를 넘겨 낳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한다. 40주가 넘어가면 사산아로 낳을 가능성이 기하급수로 증가하게 된다고. 그래서 나의 담당 선생님은 꽤 단호했다.
이렇게 제왕절개를 할 줄 알았다면 제왕절개 한 사람들의 브이로그 좀 봐둘걸 그랬나. ㅎ
처음 수술을 마치고 나와서 아기를 안아봤을 때는 마취제에 취해 있어서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리고 입원실에 올라와 비로소 내 팔에 주렁주렁 달린 다량의 진통제와 페인버스터 등을 인지했다.
물론 인지는 하되 옴짝달싹할 수는 없는 상황.
긴급하게 찾아본 제왕절개 후기에서 발이라도 꼼지락꼼지락 열심히 움직여야 회복속도가 빠르다고 했다.
최대한 발을 좌우로 움직여 보고 무릎도 구부리려고 노력해 보고 허리도 조금씩 움직여 보려고 애썼다.
(무조건 많이 움직이셔라! 움직이는 것이 살길이다)
그 이후 과정은 꽤 순탄했다.
이미 복강경의 경험이 있었던 나는 많이 움직이는 것이 최대한 빠른 회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열심히 병원복도를 걸었고 가스를 빼며 밥을 먹기 위해 노력했다.
첫째 날에는 남편을 부여잡고서 일으켰다면 둘째 날에는 많은 시간을 들이긴 했지만 혼자 몸을 일으켜보려고 애썼다.
엉덩이에 맞는 진통제도 때때로 맞아가며 그 와중에 초유를 먹이고 싶어 열심히 유축을 해가며
스스로를 기특해하며! 4박 5일의 입원일정을 보냈다.
문제는 그 뒤에 생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