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이 달라도 엄마는 너를 정말로 사랑한단다.
아기를 데리고 집에 온 그 순간부턴 전쟁이었다.
그래, 너도 이 공간이 낯설겠지.
아직 상처부위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초보엄마와 이 생명체가 한없이 낯선 초보아빠는
작은 인간의 강성울음에 어쩔 줄 몰라 헤맸다.
안 그래도 불안형 인간인 나는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작은 변화 하나하나에도 극도로 예민해졌다.
조리원에서 유축하며 보냈던 시간은 매우 호사였다.
인정사정없이 울어대는 아기의 입을 벌려 가슴을 마구 욱여넣기에는 아기도 내 마음도 여유가 없었다.
일단 분유를 먹이자. 다음 수유 때 다시 모유수유를 시도해 보면 되지. 유축이라도 해두자.
이런 마음으로 다음 수유 그리고 또 다음 수유... 모유 직수는 계속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아기는 2시간, 1시간 반마다 배 속에 무슨 알림이라도 설치한 것처럼 따박따박 일어나서 밥을 달라 요구했다.
내가 가슴을 충분히 풀고 아기가 제대로 빨 수 있도록 자세를 잘 잡을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주질 않았다.
나는 계속 마음이 급해서 가슴을 물려보는 건 그냥 기분만 내고 10분도 채 물리지 못한 채 결국 분유를 타주곤 했다.
2시간마다 아기가 밥을 먹는다고 해서 나에게 온전히 2시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아기를 먹이고 세워서 트림시키는 시간만 해도 30분이 족히 걸렸다.
내가 잘 버텨야 아기를 케어할 수 있었기에 사이사이 열심히 밥도 챙겨 먹고 잠도 틈틈이 잤다.
그것들보다 유축이 우선이 되질 못했다.
집에 와서 초반에 160ml까지 성공했던 유축양은 점점 줄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기가 한 번에 먹는 양이 80ml 언저리였기 때문에 내가 유축하는 양을 두 번에 나눠주는 것도 가능했지만 어느 순간부턴 딱 아기가 먹을 양만 나왔고, 아기가 한 번에 먹는 양이 100ml, 120ml가 되어감에 따라 유축양은 정확히 반비례했다.
그 와중에 직접수유는 번번이 실패했고 아기는 먹을 때마다 짜증이 늘었다.
나는 점점 자신감을 잃었다. 모유수유를 하기 위해 젖병도 최소한으로 사고 보온병도 사지 않고 버텼는데... 서글펐다. 나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검색을 하다 보니 모유수유 전문가가 출장으로 가정방문을 해서 가슴의 상태(?), 현 상황 등을 점검하고 모유수유가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코칭을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신청했고 전문가 선생님은 이틀 후 우리 집에 방문하셨다.
선생님은 일단 유두모양을 보시더니 깊은 탄식을 하셨다.
아기가 물기에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모양이라고.
나에게 모유수유에 대한 의지를 물어보시고 아기에게 직접 물려보시고 나서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조언해 주셨다.
"현재 모유수유하기에 상당히 어려운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백 프로 불가능한 상황은 사실 아닙니다.
엄마에게 강한 의지가 있다면요. 근데 그러려면 2시간에 한 번씩 유축, 직수를 병행하고 모유수유차를 하루에 4잔씩 마셔줘야 해요. 그리고 밤이고 낮이고 아기가 원할 때마다 틈틈이 수유를 계속해야 해요. 할 수 있겠어요?"
양은 적진 않지만 더 늘려야 하기 때문에 모유수유 촉진차를 마시며 좀 더 자주 유축을 해야 했고 시도 때도 없이 아기에게 수유를 해야만 '완모'가 가능하다는 진단이었다.
그 말을 듣는데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어지고 덜컥 겁이 났다.
모유수유를 하겠다는 의지는 있었지만 막상 남편과 나눠서 하던 수유를 포기하고 오롯이 아기를 품에 안고 나만이 수유를 해야 한다니, 낮이고 새벽이고 잠도 못 자고 계속 물려야 한다니 앞이 깜깜해졌다.
나의 흔들리는 불안한 눈빛을 선생님은 읽은 모양이다.
"엄마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애정과 면역력은 오직 모유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에요.
엄마가 다양하게 줄 수 있는 사랑과 마음은 아기에게 모유수유 이상의 가치를 줄 수 있습니다.
꼭 모유수유를 하려고 집착하지 않아도 돼요."
그 말이 모유수유를 할 자신이 없어 심하게 흔들리면서도 아기에게 죄책감, 그리고 이상한 미련 등으로 모유수유를 놓지 못하고 있는 내게 그냥 놓아도 된다고 잘 달래주는 말처럼 달콤하게 들렸다.
선생님은 일단 유축해서라도 줄 수 있을 만큼은 주되 어차피 직수 없이 유축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양이 줄어들 테고 유축 횟수를 줄여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단유를 하게 될 것이라 조언해 주셨다.
모유를 물려서 준다 보다는 모유를 어떻게든 주고 있다에 초점을 맞춰 모유를 먹이다가 단유를 하라는 진단이었다.
처음에는 모유양이 늘지 않을까 봐 불안했고,
모유양이 늘수록 아기가 잘 물지 못해 먹이지 못할까 불안했고,
거의 반 포기상태가 되어서는 나의 모유포기로 인해 아기에게 양질의 면역력을 주지 못할까, 아기가 어디 아프진 않을까 불안했다.
모유는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아기에게는 정말 좋은 영양공급원이 맞았다.
아무리 좋은 분유를 주어도 줄 수 없는 성분이 모유에는 있다.
게다가 모유수유는 산모의 산후회복에도 아주 크게 도움이 된다.
모유수유를 하게 되면 발생되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은 자궁을 수축시켜 아기를 낳고 늘어나있는 자궁의 회복을 돕고, 모유수유를 오래 하면 유방암 발생위험률도 낮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니 신이 엄마가 모유수유를 해서 아기를 돌보게 하도록 세팅을 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자연의 섭리를 더더욱 거스르고 싶지 않았는데, 끝내는 이렇게 돼버렸다.
내 유축양은 결국 30ml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지금은 단유를 결심하고 유축을 며칠째 하지 않고 있다.
유축한 30ml의 모유를 마지막으로 아기에게 준 날, 나는 약간 코끝이 찡할 정도로 서운함을 느꼈다.
이게 내 인생의 마지막(둘째 계획은 없으므로) 모유이자, 이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먹는 마지막 모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서운함이 몰려왔다.
두 달여의 시간 동안 아기에게 직접 물려본 건 몇 번 되지 않지만 모유를 유축하고 그걸 젖병에 담아 받아먹는 아기를 보며 내가 엄마가 되었음을, 엄마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아기에게 주고 있다는 행복감에 젖었었다.
이제 모유가 아닌 다른 사랑을 담아 아기에게 줘야 할 시간이 왔다.
노력한다고 모유수유를 무조건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모유가 처음부터 잘 나왔던, 아기가 쉽게 무는 유두였건, 모유수유는 엄마가 아기와 완전히 밀착해서 24시간 내내 아기가 살 수 있도록 생명력을 불어넣는 매우 숭고한 행위다.
누구에게도 결코 쉽지 않다.
모유수유를 처음 시도하고 단유를 하고 있는 지금까지 나는 계속 완모를 해낸 엄마들을 존경해 왔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키워낸 우리 엄마를 존경한다.
지금 이 글은 진하게 우려낸 홍차를 마시며 쓰고 있다.
선물 받은, 매우 향기가 좋은 홍차였는데 모유수유를 하는 동안 아기에게 카페인이 닿을까 우려되어 마시지 못했다.
시원섭섭하다는 게 이런 것일까.
마라샹궈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홍차도 마시게 되니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기에게 약간 미안해진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을 먹고 마시며 행복해진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아기에게 최선을 다해 행복과 사랑을 주려한다.
선생님말처럼 모유수유만이 아기에게 사랑을 주는 방식은 아닐 테니.
모유수유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꼭 미리 모유수유에 대해 공부를 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리고 설사 산모가 모유수유를 포기하게 되더라도 누구도 뭐라고 말을 얹어서는 안 된다.
엄마는 분명 모유수유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누구보다 더 뜨겁고 치열하게 아기를 사랑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