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서울 시민에게 선곡은 아주 중요하다. 정신머리 없이는 가뿐히 출근해도 에어팟 없이 출근 못 하는 건 학계의 정설이다. 다만 출근길에 좋아하는 가수의 새 앨범은 듣지 않는다. 필요 이상으로 마음이 아련해지거나 목적지(회사)에 도착해도 이어폰을 빼기가 싫기 때문이다.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곡들은 새벽의 특권으로 남겨두고, 너무 웅장해서 전투적이기까지 한 댄스 음악과 함께 하루치 열정을 충전한다.
나에게는 이어폰을 꽂고 세상과 단절된 채 혼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이유로 귀가할 때 누군가와 방향이 겹쳐 함께 대중교통 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무작위한 소음을 싫어해서 습관이 된 것도 있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이미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후에 신성한 귀가 의식을 치르면서까지 텐션을 유지하고 싶지는 않다. 또한 대화 내용을 불특정 다수가 들을 수밖에 없는 환경도 조금은 부담스럽다. 공공장소에서 내가 끼어들 수 없는 대화를 듣고만 있는 건 충분히 불쾌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내게 채널 주도권이 없는 상황에서 가족, 친척들과 함께 TV를 보고 있는 것과 비슷해서 악의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결국은 피해자가 생기고 만다.
소설과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실제였다면 평생 마주칠 일도 없을 것 같은 인물들을 아주 속속들이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남의 인생을 관전하며 온갖 기쁨과 슬픔을 속절없이 공유하고 여러 번의 인생을 살아 본다. 잘 쓰인 노래 가사를 사랑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겪어 본 적 없는 이별과 새벽 세 시 경 한껏 과장된 감정의 소용돌이, 단 몇 마디에 응축된 깊고 깊은 감정의 골, 누군가를 향한 절절한 진심, 생각해 본 적 없는 단어와 사소한 사물들에 대한 고찰들. 인생은 길어야 백 년, 그중에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경험의 폭은 터무니없이 좁기에 매일매일 조바심을 내며 남들이 빚어 놓은 경험들과 감정들을 탐욕스럽게 먹어 치운다. 활자와 음성과 영상들을 곱씹으며 스스로가 텅 빈 호수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그릇이 새끼손톱만 한 사람이 되지만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