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는 걸 막을 수는 없지만

by 바삭

거실에 꽃이 생기면 그 주위로 시간이 모였다가 흘러가기 시작한다. 휴대전화보다 더 조용하고 성실하게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게 바로 꽃 한 송이다. 내 집 안에서 살아가는 다른 무엇들과는 무척 다르게도,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생명체라는 점에서 그 순수성에 주목에 볼 만하다. 집을 나설 때와 돌아올 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이파리 친구들에게 한 번씩 눈길을 던진 후에 생각한다.


'오늘도 무사하네', 혹은 '어제까지는 무사했는데.'


전자라면 무심히 시선을 거두고 저녁밥을 차려 먹거나 샤워를 하면 된다. 하지만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라면 일이 좀 복잡해진다. 우선 꽃을 화병에서 뽑아낸 후 반으로 접어 종량제 봉투에 버린다. 화병 주변에 잔반처럼 누워 있는 죽은 잎들을 깨끗이 청소한 후에 마찬가지로 종량제 봉투에 던져 넣는다. 쓰레기봉투가 한결 향기로워졌다.


그리고는 너무도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아름다운 사람들을 잠시 떠올린다.

기사 제목에, 뉴스 앵커의 무미건조한 멘트 속에 잠시 등장했다 영영 사라지고 만 이름들. 사실 어제까지는 무사했던 이가 오늘 무사하지 않다고 해서 아주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미 그 이의 무사하지 않음을 확인했다면 별 수 없이 받아들이는 수밖에. 12월의 달력처럼 순식간에 내 눈앞에 들이밀어지는 무자비한 시간의 폭포를 그대로 머리 위로 뒤집어쓰고는 ‘아 정말 괜찮은 줄 알았는데. 어제까지는 괜찮았는데.’ 되뇔 수밖에. 얼떨떨한 기분으로 어떤 응어리 같은 것을 잘 접어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수밖에.


다시 화병으로 시선을 돌린다. 살아 있는 것이라면 피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불확실성이 싫다면 조화라는 해결책이 있다. 식탁 위의 화이트 와인 병에는 다이소에서 3000원에 사 온 장미와 안개꽃 조화도 있다. 거기에 시간의 흐름 같은 건 없다. 플라스틱도 어쨌든 썩으니까 변화가 있기야 하겠지만 너무 느려서 느껴지지가 않는다.


불행한 순간들을 잘 흘려보내기 위해 행복한 순간들도 순식간에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라 행복의 순간들만 내 옆에 오래오래 남았으면 한다. 조화를 사 장식하고 튼튼하고 오래가기로 소문난 물건들에 돈을 지불한다. 그래도 시간은 언제나 나보다 한 수 위에 있다. 조화에는 먼지가 쌓이고, 멀쩡한 물건은 질린다. 슬프고 아쉽고 우울하고 귀찮고 답답하고 하여튼 여러 가지 핑계를 꾸준히 대며, 대충 살아도 되는 거 아닌가 하고 머리를 굴려보지만 별 수 없이 깨닫고 만다. 정면돌파만이 무자비한 시간에게 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인 것을. 먼지 쌓인 조화는 깨끗하게 닦고 질려버린 물건을 새 물건으로 교체하며 시간 위에 올라타려고 오늘도 부단히 노력한다. 모든 사람들이 무사히 시간 위에 올라타 인생을 여행했으면 좋겠다. 어느 한 사람 중간에 낙오되지 않고 종착지에서 만난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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