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늦잠을 실컷 자고 일어난 토요일 오후, 습관적으로 휴대폰의 달력 어플을 열자 날짜 밑에 쓰여 있는 ‘일정이 없습니다.’ 한 문장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사실 이 어플에 아무것도 등록되어 있지 않은 날은 극히 드물다. 내게는 사람들과의 약속뿐만 아니라 혼자서 기억해야 할 시시콜콜한 사항들까지 달력 어플에 메모해두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날은 만날 사람도 없고 혼자 계획한 일조차 없는 텅 빈 날이었다. 12시간을 넘게 자느라 아주 극심한 공복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듯이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약속도 계획도 기억해야 할 일도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하루를 채워갈 일만 남은 것이다.
가끔 스케줄 조절에 실패하여 연달아 약속을 잡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달에는 평소보다 많은 모임에 참여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다 밤하늘을 보며 돌아오는 길, 달력 어플에 꽉 차 있는 일정들을 훑어보며 (달력 어플을 하루에도 몇 번씩 여는 게 습관이다) ‘나... 알고 보면 굉장히 외향적인 사람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린 적도 있다. 그러나 아무 일정도 없는 주말에 음침하게 미소 지으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순수한 기쁨을 느끼는 순간, 내가 순도 99.9퍼센트의 내향인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익숙한 물건들로만 가득 채워진 내 방. 그 안에서 편안한 자세로 웅크린 채 오직 생각으로만 가득 채우는 시간이 좋다. 나는 그 편안하고 날카로운 고독의 시간을 자주 그리워하지만, 그 시간이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영문 모를 두려움도 조금씩 커진다. 나는 혼자 있는 걸 즐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잘 받지 않는 성격이라 종종 ‘강철 멘탈’이라거나 '무던하다'라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리다. 나에게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기에 남들로부터 받는 상처가 비교적 미미해 보이는 것뿐이다. 가끔은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는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남들을 필요로 한다. 내가 새로운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다니는 건 바로 이런 상태일 때다. 이럴 때 나를 만난 사람들은 종종 내가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걸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 매일 아침 6시 50분에 일어나 30분간 글을 쓰고 출근합니다.
과음한 다음날에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거나 TMI를 남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