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를 하고 싶다는 생각만 벌써 몇 년째다. 꽤나 어릴 때부터 고민했으니 젊은 패기로 진작에 몇 개 했을 법도 한데 그러지 못했다. 고민만 하고 실행을 못 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인 것 같다. 첫째로는 의미 있으면서도 보기 좋은 도안을 정하기가 어렵고, 둘째로는 취향이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가 가장 중요하다. 타투는 한 번 새기면 영원히 지울 수 없다는 것. 옅어지기야 하겠으나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사고로 생긴 흉터도 마찬가지겠지만 사실 나는 그에 대해서는 별로 예민하지 않다. 다친 사실도 몰랐다가 뒤늦게 알아차린 흉터가 한둘이 아니다. 거칠게 말하면 타투 또한 몸에 상처를 내 흉터로 남게 하는 일인데 다만 그 모양을 내가 정할 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 때문에 타투를 망설이게 된다. 사고로 인한 흉터는 의도한 바가 아니지만 타투는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물이다.
다시 말해 내가 망설이는 이유는 사회적 편견이나 남들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인생의 어느 시점에 믿고 있던 가치관과 취향이 고스란히 몸에 남는 일이 다소 무겁게 느껴져서 그렇다. 정확히는 지금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새겨진 그림 혹은 글자를 보며 미래에 후회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없다. 그건 내가 스스로를 아직 완전한 ‘어른’으로 규정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사람인데, 나는 아직 나의 타투에 책임을 질 자신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본인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혹은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타투를 새기는 사람들의 선택이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나같이 쓸데없이 생각 많고 의미부여에 목숨 거는 사람도 있을 뿐이다. 고민의 무게를 좀 덜어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타투도 어느 날 우연히 생긴 흉터처럼 여겨야 할까? 인생의 한 시점을 지배한 가치관을 그저 우연으로만 여기면, 나중에 그것이 변하게 되더라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간에 생각이 정리되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 같다. 역시 올해도 타투는 틀렸다.
* 매일 아침 6시 50분에 일어나 30분간 글을 쓰고 출근합니다.
과음한 다음날에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거나 TMI를 남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