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봤던 귀여운 아역배우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멜로 연기를 하고 있고, 분명 엊그제 군대에 갔던 것 같은 남자 연예인들이 전역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생각해보면 아역배우 출신 배우들은 그들만의 시간을 성실히 살아왔을 뿐인데 ‘언제 이렇게 컸냐'는 말은 좀 지겨울 거다. 나와 접점이 없는 완전한 타인의 시간은 놀랍도록 빠르게 흐른다.
문득 나의 2년 전은 어땠는지 돌이켜 본다. 바로 어제처럼 느껴지는 일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다니던 기억은 마치 전생처럼 아득하다. 코로나 하면 코로나 맥주만 떠올리던 시절이었다. 여행사진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얼굴들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그리움을 넘어섰다. 사실은 약간 두렵다. 바로 전날까지 일을 했으면서 피곤한 줄도 모르고, 비행기로 몇 시간을 날아간 뒤 낯선 도시에서 짐을 풀던 그 용감한 젊은이가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사람 같아서 그렇다. 약간 긴장한 상태로 길을 나서고 모든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예민함을 잊어버린 것만 같다. 잃어버리면 안 되는 물건을 잃어버린 것처럼 초조한 기분이 든다.
여행을 떠나지 못한 2년이 무슨 암흑의 시기였던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새로 이사 온 동네의 맛집을 발굴해 단골이 되었고, 하루 종일 집에 붙어 있으면서 내 방에 햇빛이 가장 잘 들어오는 시간이 언제인지, 그 햇빛을 받으며 커피를 내려마시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달았다. 또 집 앞 나무의 이파리 색이 계절마다 조금씩 바뀐다는 사실, 오후 8시쯤 공원에 가면 산책 나온 강아지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요즘 나의 일상은 이토록 평온하다.
바로 그 평온함이 이제는 정말로 떠나야 하는 이유다. 평온함에 안주하지 않으려면, 낯선 환경에서 믿을 사람은 나 자신 뿐일 때의 긴장감과 근거 없이 샘솟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동안 내가 굳게 믿어온 가치를 모조리 깨부수는 타인들의 세계를 엿보고, 그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 없음을 상기해야 한다. 고인 물을 조금씩 흘려보낼 줄 알아야 비로소 한결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법이다. 비록 여권은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도 모르겠고 비행기 예약 어플은 지워버린 지 오래지만, 기회만 된다면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 평온한 일상에 균열을 만들고 돌아올 것이다.
* 매일 아침 6시 50분에 일어나 30분간 글을 쓰고 출근합니다.
과음한 다음날에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거나 TMI를 남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