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금기에 대하여
내게는 몇 가지의 생활 금기가 있다. 어긴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지만 지키지 않으면 어쩐지 찝찝한 금기들인데, 예를 들면 밤에 문을 닫은 채로 선풍기 켜고 자기 (저체온증이나 질식사를 유발한다는 설), 쇠 숟가락으로 요거트 먹기 (유산균이 파괴된다는 설) 같은 거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면 앞의 두 금기 모두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어린 시절 우리 자매가 선풍기를 켠 채로 잠에 들면 그걸 귀신같이 알아챈 엄마는 방에 들어와 선풍기를 끄고 나갔고, 간식으로 요거트를 먹을 때 내 손에는 항상 플라스틱 숟가락이 들려 있었다.
각종 금기의 기원을 찾자면 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나는 '다리 떨면 복 나간다'는 한국인의 기본적인 금기부터 ‘문지방 밟지 마라’라는 할머니의 풍수지리 조기 교육까지 골고루 습득하며 자랐기 때문이다. 1920년대생인 할머니는 특히 손녀가 저지르는 ‘복 나가는 행동’에 대해서 엄중한 경고장을 날리곤 했는데, 금기를 어겼을 시 벌어질 수 있는 무시무시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밥 먹을 때 쩝쩝거리거나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기, 다리를 꼬거나 떨지 않기, 문지방을 밟고 넘어 다니거나 그 위에 앉아 있지 않기, 베개를 세로로 두지 않기, 화장실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잠들지 않기 등등. 어린 나의 눈에는 그것이 꽤나 진지하고 답답한 룰처럼 보였던 게 사실이지만, 할머니는 그저 손녀가 별 탈 없이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을 당신에게 익숙한 언어로 표현했을 뿐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평생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새벽에 화장실을 가다가, 내가 무의식 중에도 문지방을 밟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용히 충격을 받았다. 생각해보니 각종 금기뿐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모님의 생활 습관들마저도 어느샌가 내게 다 스며들어 있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지금 나는 틈만 나면 거실 불을 끄고, 콘센트를 뽑고, 환기를 하고, 재활용 쓰레기가 쌓여 있는 꼴을 참지 못하고, 가스 밸브를 잠갔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바닥의 머리카락을 줍는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을 속으로 은근히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까지 부모님과 똑 닮았다. 찬바람이 씽씽 부는 겨울 날씨에도 굳이 창문을 열어놓고 외출하는 내 모습에서 아빠의 모습을 발견한 적도 있다. 가족들이 추워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집안의 모든 문을 활짝 열곤 했던 아빠가 생각나 미간을 찌푸린 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집안 특유의 분위기나 정서를 만드는 데에는 이렇게 사소한 요소들이 영향을 많이 끼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미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 습관들은 가끔씩 짜증 나고 가끔씩은 든든하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그들의 방식이 다 옳다고 믿지는 않는다. 어떤 일은 부모님의 방식이 나의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월등하지만 또 어떤 일은 내 방식대로 하는 게 훨씬 낫다. 그러나 내가 무슨 행동을 하든 간에 그 안에 부모님의 지분도 조금씩 섞여 있을 거라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어쨌든 나는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세상을 배웠으니까.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 사실이 점점 더 가슴에 와닿게 느껴질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든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난 언젠가의 겨울, 나는 어김없이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며 부모님의 꺾을 수 없는 고집과 꺾이지 않는 사랑을 떠올리고는 먹먹해지고야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