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를 취득했다. 황금 같은 직장인의 주말에 서로 좋은 말 안 나올 게 뻔한 강사 선생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으나 처음 잡아보는 운전대가 신기했고 나름 재미도 있었다. 도로주행에서 한 번 떨어지고 나니 그 조그맣고 네모난 카드가 뭐라고 미치도록 갖고 싶어지는 바람에 면허 따는 꿈까지 꿨다. 어찌 예상보다는 순탄하게 무면허자 신분을 탈피했지만, 월세 살이 직장인에게 차는 사치인 법이므로 운전면허증은 지갑 안에 고이 모셔 둔 지 몇 주 째다.
타고난 길치였던 터라 '내 인생에 운전은 없다' 장담하며 살아왔으나 길 잃는 두려움보다 놀러 가겠다는 의지가 강해 여기저기 쏘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운전에 욕심이 생겼다. 게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쟁이 나거나 좀비 떼가 창궐하면 짧은 데다 나약하기까지 한 두 다리에만 의지해서 도망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여러모로 운전을 할 줄 모르는 건 생존에 굉장히 불리해 보였다.
남들 할 때 안 하고 뒤늦게 운전대 한 번 잡아보겠다고 안달복달하는 내 모습을 보니 역시 사람 일에 '절대로'는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미래의 나도 지금의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졌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지금은 1년 뒤의 내 취향도 도무지 예상할 수가 없다. 대학생 시절 팔뚝에 타투를 하겠다고 직접 그렸던 도안은… 볼 때마다 등골이 서늘하다. 영 납득 안 가는 모양새의 도안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걸 그릴 당시 나는 스스로의 인생에 잔뜩 취해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들이나 취직하는 거 아니냐던 그 고집 센 아이는 세상의 거친 풍파에 정신을 약간 차리더니 오늘도 8시 59분 딱 맞춰 출근해 성실하게 일했다. 몇 년째 한 치의 오차 없이 1분 전에 출근하는 나를 보고 누군가는 회사원이 거의 천직인 사람 같다는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현실감각 없고 어딘가 붕 떠 있던 그 시절이 딱히 그리운 건 아니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고 예민하던 성격은 흐르는 물에 매끈해지는 돌멩이처럼 많이 깎여 나갔고 멘탈이 강해진 건지 자기 방어 기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스스로를 덜 힘들게 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중이다. 세상에는 영원한 정답도 영원한 오답도 없다는 사실도 드디어 눈치챘고, 그래서 모두의 주목을 받는 태양보다는 그 옆을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이 되고 싶어졌다. 스물세 살 때의 분홍 단발머리나 지갑 속 운전면허증처럼, 살면서 절대로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은 내 인생에 아무렇지 않게 다녀가고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점점 멀어지는 듯하다. 지금은 그것들 사이에서 자꾸만 허우적거리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전자에 크게 놀라지 않고 후자에 크게 아쉬워하지 않는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나는 그걸 여유 혹은 연륜이라고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