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말 조심해, 근데 할 말은 하고 살아야 돼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되기

by 바삭

솔직한 사람이 좋다고 말하려다 문득 솔직함의 범위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 톨의 가식도 없이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은 오히려 매우 위험한 부류이고, 정도의 차이일 뿐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 마련이니까. 들을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불행의 민낯을 그대로 털어놓는 건 상대방의 마음에 다소 버거운 짐을 지운다. 섣불리 짐을 나눠 들려고 하다가는 호구가 되기 마련임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리하여 내가 원하는 솔직함의 미덕은 인생 전부를 전개도처럼 펼쳐 놓는 식이라기보다는, ‘자신의 현재 감정에 귀 기울이고 바라는 걸 요구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의견을 확실히 하는 것이 대단히 공적인 상황에서나 필요한 능력은 아니다. 당장 점심 메뉴를 정하는 일부터 그 회사에 입사를 할까 말까, 그 주식을 팔까 말까 결정하는 일까지, 매사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기 십상이다.


무책임한 의사결정은 남에게도 종종 속 터짐을 선사하지만 무엇보다 본인에게 가장 치명적인 독이 된다. 대화를 할 때 갈등을 피하고 싶은 나머지 무조건 상대 의견에 동의하는 행동은 역설적이게도 '나는 전혀 네 말을 듣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자신의 상태를 결정할 수 있는 건 자신 뿐이니 별로 내키지 않는다면 솔직하게 싫다고 말한 뒤 미안해하지 않아야 한다. 나 역시 거절과 의견 충돌에 면역이 없는 편이라 거절할 때 미안하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덧붙이지 않으려 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내 호의가 어떤 바보들에게는 용기를 심어준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쉽게 웃어주는 행동 또한 그만두려고 노력한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한복판에 맨 몸으로 뛰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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