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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삭 Mar 07. 2023

서울 사는 사람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서울 한복판에 살다 보니 자연을 납작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햇빛은 조그만 알약으로, 지저귀는 새소리는 아득한 소음으로.


비타민D를 꼭 챙겨 먹으라는 조언을 들었다. 햇빛을 못 보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특히 부족한 영양소라는 것이다. 나는 조금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안 그래도 매일매일 챙겨 먹고 있다’고 대답했다. 영양제 통에 적혀 있는 ‘비타민D’나 ‘마그네슘’, ‘칼슘’ 같은 단어는 어쩐지 사람을 안심시킨다. 하얗고 동그란 알약들이 몸 안에서 정확히 무슨 작용을 하는지 일일이 관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몸에 대한 죄책감은 덜어내 주기 때문이다. 사람이 너무 햇빛을 못 보고 그러면 우울해진다던데. 나는 영양제를 잘 챙겨 먹고 있으니 적어도 그것 때문에 우울할 일은 없겠지, 하고.


마지막으로 새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본 게 언제였던가? 도심 한복판의 내 방에서도 창문만 열면 새소리를 들을 수 있기야 하지만, 그 소리는 차라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하면 믿을 정도로 어딘가 현실성이 없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 (책상, 노트북, 종이 뭉치, 시계 그리고 흰 벽지)과 새의 지저귐이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일치하지 않으니 후자를 손쉽게 무시해 왔다. 서울 한복판에 살다 보니 자연을 납작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햇빛은 조그만 알약으로, 지저귀는 새소리는 아득한 소음으로.


사람은 주변 풍경을 어느 정도 닮아간다고 생각한다. 18세기의 농촌 풍경화 속 사람들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풍경에 녹아들어 있다면, 21세기 도시 풍경 속 사람들은 직선의 형태에 가깝다. 도시에서 네모와 직선만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그리고 그 직선이야말로 도시에 사는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이자 위협이다. 각지고 단단한 것들은  절대 변하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리는 꽃이나 눈 깜빡하면 저만큼 흘러가 있는 구름과 달리, 빌딩 숲 도시는 100년이 지나도 그대로일 것 같은 기이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직선의 세상 속에 사는 사람은 당장 손에 쥐고 있는 것만이 영원할 거라고 믿기가 쉽다. 영원한 것은 절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변화에도 면역력이 없다.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방해물을 만나면 급히 방향을 꺾으려다 툭 부러지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영원한 건 마치 달 같은 게 아닐까. 시시각각 모양이 변하지만 본질을 잃지 않는 것. 존재가 변화 그 자체여서 역설적으로 변함없는 존재. 나는 달과 별이 좋다고 그렇게 떠들고 다녔으면서 정작 변하거나 비워내는 건 너무나도 무서워하며 살았던 것 같다. 몇 년이면 배터리가 금세 낡아 새것으로 교체해야 하는 전자 기기들과 눈부시게 빛나는 고층 건물들이 마치 영원할 것처럼 착각하면서, 풀벌레나 새소리, 서늘한 겨울바람이나 창틈으로 스며드는 햇빛같이 진짜 살아있는 것들을 낯설어하면서 말이다.


내일은 화분을 사러 가야겠다. 매번 흔들리고 변화하지만 쉽게 꺾이지는 않는 식물 하나를 곁에 두고, 나도 그와 닮아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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