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받는 사람의 하루를 사려 깊게 짐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무지하면 받아도 별로 기쁘지 않은 선물을 하는 비극이 일어난다.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기. 인생의 과제 중 하나다. 잘하는 걸 끝내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그 과정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집중하다 보면 자신이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끔찍하게 못하는 게 뭔지도 역시 알게 되는데, 이건 뜻밖의 보너스 수확인 셈이다. 보통 재능이 없는 일이라면 간단한 작업이라도 과하게 긴 시간이 걸리는 경향이 있다. 잘하고자 하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예를 들어 나는 선물 고르기에 영 재능이 없다. 그런데 이 일은 재능이 없다는 핑계로 남에게 맡기거나 대충 할 수 없다. “내가 원래 선물을 잘 못 골라” 하며 소중한 이들에게 거지 같은 선물을 했다가는 수많은 서운함을 적립하고 말 테니. 그래서 나는 선물 고르는 데 어쩔 수 없이 아주 긴 시간을 투자한다. 며칠 전 침대에 누워 나의 이 오래된 비효율성에 대해 고민하다 한 가지 가설을 얻었다. 실용적인 물건을 주고픈 머리와 하찮고 쓸모없는 걸 귀여워하는 가슴이 서로 싸우고 있는 건 아닐까? 최소한으로 정돈된 생활용품들 사이에 양쪽 눈이 짝짝이인 낙타 인형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내 책상처럼. '이왕 선물하는 거 잘 써줬으면 좋겠어!'와 '그래도 귀엽잖아…'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으려고 하니 당연히 시간이 지체되는 것이 아닐지.
선물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받는 사람의 하루를 사려 깊게 짐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무지하면 받아도 별로 기쁘지 않은 선물을 하는 비극이 일어난다. 책보다는 영화 보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소설책 선물을 한다거나, 친환경에 진심인 사람에게 플라스틱으로 만든 쓸모없는 장식품을 선물한다거나 하는 일 등이다. 아뿔싸, 상상만 했는데도 마음이 몹시 불편해지고 있다. 선물 받은 물건이라 버릴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곳에 두기도 싫은 상황의 원인 제공자가 바로 내가 되고 싶지는 않다.
지인 중에는 본인의 생일이 임박하면 ‘카카오톡 위시리스트’에 갖고 싶은 물건들을 가격대별로 추가해 놓는 사람이 있는데, 그 목록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이 중에 하나를 선물하면 적어도 돈낭비, 자원낭비는 없겠구나. 솔직하고 담백하다. 안 그래도 복잡한 인생인데 소중한 사람들에게 굳이 짐 한 개 더 얹어줄 필요는 없으니까. 나도 요즘 친한 지인들에게 선물을 할 땐 필요한 게 있는지 미리 물어본다. 선물을 오래 주고받은 사이라면 이제는 나의 상상력만으로 물건을 고르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들 서프라이즈의 낭만 따위 안 챙기는 연차가 된 건지 애초에 끼리끼리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열에 아홉은 기다렸다는 듯 입에서 위시 리스트가 줄줄 나온다. 성공률 100%의 선물을 하는 나도 마음이 한결 가볍다. 본인에게 딱 필요했던 물건을 오래오래 쓰며 그걸 선물한 내 생각도 오래오래 해 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