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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삭 Jun 28. 2023

나는 뱁새지만 허리는 꼿꼿하다

엄마는 늘 말했다. 어디 가서 무시 안 당하고 싶으면 항상 자세는 꼿꼿하게, 발음은 정확하게 하라고. 역시 경험에서 우러나온 연장자의 조언은 귀담아들어야 한다. 허리 한 번 폈을 뿐인데 구겨진 마음까지 함께 펴졌다.


허리 통증은 내 오래된 친구다. 이제 그 친구가 없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으며, 며칠간 소식 없이 잠잠하더라도 나의 마음에는 동요조차 없다. 평온히 일상생활을 하고 있으면 조만간 반드시 돌아온다는 걸 안다. 하지만 둘도 없는 친구 사이에도 어느 정도의 거리는 필요하다. 아무리 통증을 친구로 받아들였기로서니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건 부담스럽다. 통증이 선을 넘는 것처럼 느껴질 때마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우리 사이 적정 거리를 유지하려면 바른 자세를 습관으로 만들면 된다. 어린아이도 이해할 정도로 쉬운 해결책이다. 그런데 왜 자꾸만 다리를 꼬고 목을 앞으로 쭉 빼고 싶어 미칠 것만 같을까. 왜 집에서 밥을 먹을 때는 한쪽 다리만 의자 위에 올리고 싶고, 바나나처럼 옆으로 살짝 휜 이상한 자세로 눕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까. 왜 딱히 편하지도 않으면서 꾸역꾸역 엎드린 자세로 유튜브를 보고 목이 꺾인 채로 책을 읽고 싶은 걸까. 허리도 안 아프고 싶고 거지 같은 자세도 포기할 수 없다니, 인간의 마음이 이렇게 이기적일 수가 없다.


얼마 전에는 걸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심한 허리 통증을 겪었다. 척추 측만증으로 인한 몸의 불균형과 안 좋은 자세, 누적된 피로가 원인이었다. 다행히 병원 치료를 받고 금방 호전되었지만 이렇게까지 선 넘는 통증은 살면서 처음이라 적잖이 놀랐다. 얼마나 놀랐던지 그 이후로 몇 주째 바른 자세 프로젝트까지 진행 중이다. 의자에 앉을 때마다 필라테스 선생님의 조언을 척추뼈에 새긴다. 갈비뼈는 닫고, 허리는 곧게 펴고, 배와 기립근에 힘을 딱, 마지막엔 엉덩이에도 힘을 빡. 두 발은 절대로 꼬지 않고 당근마켓에서 구매한 각도조절 발받침대 위에 얌전히. 그러면 어깨에 들어간 힘은 저절로 빠지고 목도 길게 주욱 늘어난다. 단점이라면 지속 시간이 불과 5분 정도라는 것. 하지만 앞으로 조금씩 늘어날 거라 믿는다. 다리를 꼬고 싶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스스로의 뺨을 때리는 상상을 하니까.


그런데 꼿꼿한 자세로 일을 하니 덤으로 딸려 오는 효과도 있다. 출근하자마자 이유 없이 피곤하고 집에 가고만 싶은 마음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데도, 자세 하나 바뀌었다고 사람이 묘하게 생생해 보인다. 왠지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사람, 당당한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사람이 된 기분이다. 엄마는 늘 말했다. 어디 가서 무시 안 당하고 싶으면 항상 자세는 꼿꼿하게, 발음은 정확하게 하라고. 역시 경험에서 우러나온 연장자의 조언은 귀담아들어야 한다. 허리 한 번 폈을 뿐인데 구겨진 마음까지 함께 펴졌다.


물론 카리스마 어쩌고 하는 느낌은 나만의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몸집이 작기 때문에 아무리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어봤자 여전히 남들 눈높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착각 좀 하며 살면 어떤가, 어차피 황새가 될 것도 아닌데. 기왕 뱁새로 살 거라면 허리라도 꼿꼿한 게 좋지 않을까. 나는 뱁새지만 세상에서 제일 당당한 뱁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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