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제 회사 유튜브 담당자인
브이로그를 찍어 유튜브에 올리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직장 다니면서 책도 쓰고 영어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바텐더 자격증도 따고 여행도 많이 다니니 일상에 콘텐츠가 넘쳐 나는 까닭이다. 직장인 3대 허언 (퇴사하고 유튜브 할 거야/퇴사하고 제주도 갈 거야/금주할 거야) 중 하나를 내 입이 아닌 남의 입에서 듣는 건 꽤나 솔깃한 유혹이지만, 각 잡고 열심히 해볼 생각은 여전히 별로 없다.
표면적인 이유는 "여기서 유튜브까지 하면 진짜 과로사할 수도 있음." 일부 사실이지만 핑계이기도 하다.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살긴 해도 비밀스럽게 빈둥거리거나 숙취에 얻어맞고 시간을 버리는 경우도 상당하기에... 할 이유만 충분하다면 시간이야 만들어 내면 될 일이 아닌가. 진짜 이유는 내가 영상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일에 상당히 겁을 집어먹는 편이기 때문이다. 드러내기를 꺼린다니? 에세이를 출간하고 북토크까지 연 사람이 할 얘기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영상과 텍스트는 다르다.
영상은 너무나도 직접적이고 강렬하다. 책을 읽을 때는 템포를 조절하며 어떻게든 내용을 소화할 수 있지만 영상은 그게 안 돼서 자주 체한다. 가끔 평소보다 오랜 시간 영상을 보고 잠든 밤이면, 나의 뇌는 기괴하게 혼합된 꿈의 형상으로 그걸 다 토해낸다. 영상을 볼 때는 내가 아니라 기계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그 거침없는 자극 덕분에 콘텐츠 시장에서 영상이 주류를 차지하고 텍스트는 저쪽 어딘가 취향의 섬 중 하나로 밀려나게 된 걸 텐데도, 나는 여전히 텍스트로 나를 드러내거나 텍스트로 세상을 알아가는 게 좀 더 편하다.
회사에서 똥 같은 하루를 보내고 충동적으로 찍었던 브이로그는('퇴사하고 유튜브 할 거야'를 실천), 이후 편집하는 장본인이 영상에 집중을 못하는 바람에 말아먹었다. 신문 기사를 읽다가 '내 또래 세대는 유튜브로 검색을 한다고? 글로 읽으면 5분이면 습득할 정보를 15분짜리 영상으로 봐야 한다니 무슨 짓...?'이라고 생각하는 내 모습이 살짝 마음에 들면서도 동시에 뒤쳐지는 걸지도 모른다고 느끼며, 그래서 가끔 두렵다.
비디오형 인간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회사에서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무려 '유튜브 담당자'다) "사실은 유튜브보다 책을 더 좋아해요."라고 밝히는 건 금기에 가깝다.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공부하듯' 각종 클립을 보고, 인기 요인을 분석하다가 결국 책 좋아한다고 다 엄청 똑똑한 건 아님을 적극 증명한 뒤 퇴근하면 고뇌가 몰려온다. 나 그냥 업종을 바꾸는 게 나을지도...
텍스트형 인간과 비디오형 인간은 계속해서 서로를 신기해하며 공존할 것인가? 아니면 결국엔 조그마한 텍스트 섬이 거대한 비디오 왕국의 식민 지배를 받는 결말일까? 감히 예측은 못 하겠고 어떤 결말이든 어떻게든 적응하는 사람이 승자겠지만(요즘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콘텐츠 창작자들이 많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종이책을 꺼내 들고 잠시 현실을 잊는 나의 아침 평화만큼은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