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는 거제에 다녀왔다. 어김없이 출발 하루 전이 되어서야 계획을 통보하는 불효자식의 패턴에 어느 정도 적응한 엄마는 대뜸 배 타지 말라는 이야기부터 했다.
"배 안 타. 차 타고 갈 거야."
"바다 위로 다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몰라. 엄마는 그것도 무섭다."
여행 좋아하는 자식을 둔 죄로 엄마는 겁이 많아졌다. 모든 종류의 교통수단이 엄마 눈엔 시한폭탄으로 보일 것 같긴 하지만, 배는 그 정도가 유독 심하다. 자식들이 배를 타는 상상만 하면 가슴이 두근거려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그리하여 20대 초반 홀로 떠난 그리스에서 무려 12시간 동안 배를 탔던 사실은 아직도 비밀이다. 엄마를 안심시키려고 슬쩍 말을 돌려본다.
"엄마, 부산에서 거제도까지 1시간밖에 안 걸려. 이러다가 미래에는 제주도까지 차 타고 가겠어."
"그러니까 그만 좀 돌아댕겨." (?)
원래는 소주파가 아니지만 섬에서는 소주를 마셔야 예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내가 그렇게 정했다), 블로그 평점도 없는 한 조용한 횟집을 찾았다. 창문 밖 노을 지는 항구를 배경으로 회 한 점, 소주 한 잔 메들리를 뽑아내는 우리를 유심히 지켜보던 사장님은 무심한 밑반찬 리필과 함께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어요? 여긴 서울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서울 사람에게 이건 최고의 칭찬이다.
"숙소가 어디예요? 여기서 해 지면 숙소까지 못 갈걸. 우리 동네엔 택시가 한 대밖에 없는데, 그 양반 지금 시간엔 시내에 가 있어."
이건 서울 촌놈이 종종 저지르는 실수다.
"예? 일곱 시 반밖에 안 됐는데 벌써요?" 동요하면서도 소주잔 꺾기를 멈추지 않는 우린 이미 관광객 특유의 '어떻게든 되겠지' 식 노답 낙관주의를 장착한 상태였고, 사장님은 쿨한 말투로 "가게 닫으면 차로 태워다 줄 테니까 먹고 있어." 통보하시고는 훌훌 사라지셨다. 어차피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기 때문에 남은 회는 포장하고 후다닥 가게를 나와 보니 사장님은 이미 12인승 승합차에 시동을 걸고 계셨다.
연신 "자식 같아서" 라며 껄껄 웃던 사장님은, 길치의 치명적인 안내멘트(산 쪽에 있는 흰색 집인데요...)만 듣고 내비게이션도 없이 밤바람을 가르더니 "다음에 회 먹으러 올 거면 미리 전화해요. 내가 모시러 갈게."라는 더없이 낭만적인 말과 함께 사라지셨고 나는 그분을 제2의 아버지라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자식 같아서 그랬다는 말이 이토록 따스하게 들릴 수 있다니. 회식 자리에서 같은 말을 들었다면 분명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악의에 가득 차 있었을 텐데...
섬의 밤은 바다, 하늘, 땅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둡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 무엇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동시에 그 어떤 새로운 일도 영영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군가에겐 치열할 삶의 터전에서 현실을 잊고 바다와 별, 술과 고양이에만 집중할 수 있는 건, 멀리서 찾아온 여행객만이 누리는 특권이자 오만함이다. 나는 주변 모든 것들이 너무 거대하게 느껴질 때마다 별수 없이 섬으로 도망친다.
섬을 좋아하는 내게 누군가는 '도시에서만 살아서 그렇다'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것도 어린 시절 자기 방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가져본 적 없는 것을 좇는 게 타고난 기질이라면 그것도 참 골치 아픈 인간 유형이라고 생각한다. 안주하지 못하는 성향일수록 현실에 불만족할 위험이 크다. 그래서 내겐 캄캄한 밤바다에서 파도 소리를 듣고 뒷목이 뻐근하도록 북두칠성을 찾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건들은 내 바람과 상관없이 그냥 일어나는 것이니 지상에 있는 동안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섬의 밤은 변함없이 분명하게 말해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