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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삭 Sep 08. 2021

예술이 혼잣말이 되지 않으려면

안에서 보는 것과 반대일 수도 있어요

유체이탈을 하지 않는 이상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잠시라도 멈추는 건 불가능하다. 반면 타인의 생각은 어쩔 수 없는 육체의 장벽을 한 단계 더 거쳐야만 전달되며 그마저도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하나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모든 소통의 디폴트 값은 오해라고 생각한다. 타인이 내 말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줄 거라는 기대는 지나친 욕심이고, 나 역시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덜 오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행간에 떠다니는 오해들을 기민하게 캐치하여 바로잡는 것이 바로 소통의 기술인 것이다.


글과 그림 역시 오해의 연속이다. 목소리마저도 입술을 떠나는 순간부터 통제를 벗어나는데 거기에 글자와 색이라는 단계가 더해진 상황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나는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건 충분한 시간을 들여 글을 쓸 수 있는 상황에만 한정된다. 정성껏 쓴 글에서조차 스스로를 털어놓기에 급급한 나머지 읽는 이의 입장은 종종 뒷전으로 밀려난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자기표현이라는 점에서 모든 사람이 예술가라고 변명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나의 예술은 꽤나 자주 혼잣말처럼 느껴져 부끄러워지곤 한다.


누구에게나 자기 얘기가 제일 재밌다. 예술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하고자 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데일 카네기가 오래전부터 강조했듯이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어하는 건 자기 얘기 아니면 자기 이름이다. MBTI의 선풍적인 인기에는 이러한 사실이 한몫했다고 본다. 16가지 성격 유형 중 나와 관계없는 알파벳 조합은 한 번 듣고 잊어버리는 반면 내 MBTI 유형에 대한 설명은 한 줄도 빼놓지 않고 읽는다. 심지어는 '누가 내 얘기를 써 놨네'라는 소름 돋게 자기중심적인 소감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창작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내 이야기는 나한테나 재미있지, 남들에게는 가수 a와 배우 b가 사귄다는 얘기가 백 배는 더 재미있다는 걸 끊임없이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예술가는 자신의 목소리가 남들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훌륭한 예술을 하기란 그만큼 어려운 것 같다. 그 낯선 부끄러움을 넘어설 수 없다면 자기만족, 말 그대로 혼잣말뿐인 예술이 되고 만다. '행간을 읽는 건 네 몫이다'라는 식의 겉멋 든 사고방식은 아무에게도 존경받지 못하는 상사에게나 어울리는 태도다. 나조차 나를 모르면서 남에게 해석을 맡기는 꼴이다.


역량이 뛰어난 예술가들은 자기표현을 하며 동시에 남들을 설득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신비롭다. 나는 가수, 무용수, 배우처럼 무대에 서는 사람들을 매우 좋아하는데, 겉으로는 자신에게 한껏 심취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누구보다 더 객관적으로 모든 걸 파악하고 있는 상태라는 점이 존경스럽다.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건 그만큼 뼈를 깎는 노력으로 스스로를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들여다본 결과일 것이다. 어느 정도 재능은 타고나야겠지만 그렇게 온 무대를 가득 채우는 자신감은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니까. 


냉정히 말하면 스스로를 정확히 알고 표현하는 데 성공했더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공감할지는 알 수 없다. 그 불확실성이 수많은 창작자를 좌절하게 만든다. 그나마 확실한 건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의 명언처럼 내 장단에 맞춰 춤을 추다 보면 주파수 맞는 사람들은 알아서 모여든다는 것, 그리고 남의 장단에 맞추느라 내 박자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뿐이다. 물론 나도 내 얘기가 제일 재미있는 미성숙한 인간인지라, 함께 춤춰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박자를 놓치고 입꼬리가 씰룩씰룩 올라가는 버릇은 아직 고치지 못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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