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에 관하여
우산이야말로 내게는 의문투성이인 물건이다.
인간의 손에 들린 도구가 돌도끼에서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는 동안 정작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방법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게 통탄스럽다. 비만 오면 한층 더 부스스해지는 곱슬머리인 탓에 어린 시절부터 비 오는 날을 무척 싫어했으나, 그런 걸 신경 쓰지 않게 된 지금도 신발과 가방이 젖는 건 여전히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달갑지 않은 건 실내에 들어와 젖은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하는 순간이다. 다행히 요즘은 이곳저곳에 친환경 빗물 제거기가 생겨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들고 다닐 일은 별로 없지만 그것도 물기를 완벽히 말려주지는 못 하는 것 같아 영 아쉽다. 합리적인 모양새와 직관적이고 손쉬운 사용법 등 우산이 갖춘 장점들이 있다고 해도, 그에 못지않게 아쉬운 점도 끝없이 많기 때문에 결국엔 ‘비 오는 날은 침대에 누워 빗소리 듣는 게 최고다’라는 결론으로 귀결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어떤 분야에서든 장비 갖추는 걸 좋아하므로 비 오는 날 장착하는 아이템도 몇 개 갖추고 있다. 장화와 우의는 몇 해 전 장만했고 방수포로 만들어져 아주 훌륭한 방수 기능을 자랑하는 가방도 애용한다. 하지만 그중 내게 진정으로 만족을 주는 물건은 가방뿐이다. 아무리 비싼 우의나 장화라도 장시간 착용하면 별 수 없이 습기가 차고 건조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라 귀찮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종 ‘우천 시 장비’의 가장 큰 맹점은 지나치게 이목을 끈다는 것인데, 그거야말로 길거리에서 주목받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게는 치명적인 단점이다. 장대비가 내리는 것도 아닌데 파라솔 크기의 우산에 우의와 장화까지 갖춘 사람이 지나간다면 아무래도 한 번쯤은 뒤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불의의 배송 사고로 나한테만 호그와트 입학통지서가 안 온 건 아닌지 꾸준히 의심하게 만드는 영화 <해리포터>에는 탐나는 마법 주문이 수도 없이 나온다. 순간이동은 물론이고 설거지를 해주거나 상대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해리포터 세계관에서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인상 깊었던 마법은 바로 <신비한 동물사전>의 주인공들이 마법 지팡이로 우산을 만들어 쓰는 장면이었다. 공기의 흐름을 조작하는 건지 뭔지 이과가 아닌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이과생이라도 알 길이 없겠지만) 실내로 들어가기 전 탈탈 털고 조심조심 접을 필요 없이 그저 지팡이 하나로 해결되는 우산이라니! 줄곧 상상하던 이상적인 우산과 아주 흡사했던 것이다. 내가 모르고 있을 뿐 지금 세상 어딘가에서는 최신식 우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동네 편의점에서 오천 원 주고 살 정도로 일상 속에 녹아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음악에 심취해 있던 학창 시절, 꼬인 이어폰 줄을 푸는 게 너무나 귀찮았던 나는 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이어폰이 있다면 백만 원이라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이없는 용량의 MP3와 켜지는 데만 십 분 이상 걸렸던 컴퓨터를 쓰면서도 딱히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이어폰에 한해서는 끝없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니 2010년대 후반, 내가 꿈꾸던 것과 정확히 같은 모양의 무선 이어폰이 출시되자 곧바로 줄 이어폰에게 이별을 고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는 마음 한편에 작은 기대도 품어 보았다. 허무맹랑한 바람인 줄 알았던 무선 이어폰의 꿈이 기적적으로 이루어졌듯이, 언젠가는 해리포터 속 마법 지팡이처럼 완벽한 우산이 내 앞에 나타날 수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