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나면 엽서를 보낼게요

엽서에 관하여

by 바삭

마지막으로 편지지를 사본 것도 벌써 몇 년 전의 일인 듯하다. 해마다 친구들 생일이 돌아오면 그나마 직접 몇 자 적곤 했던 생일 축하 편지도 이제는 생일 모자를 쓴 발랄한 이모티콘 몇 개로 완벽히 대체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아날로그적 감성에 익숙한 인간이라 디지털 형태의 메시지들은 왠지 손에 잡히지 않는 기분이 든다.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이곳저곳에 백업해 두긴 하지만, 기계의 전원을 끄는 순간부터는 내가 그것들을 소중히 여긴다는 느낌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친구들에게 받은 손편지들을 책상 밑에 애지중지 보관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경험이다.


편지지는 그렇게 세상에는 아직 존재하지만 내 세상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묘하게 낯설어진 물건이 되었다. 그런데 편지지와 비슷한 부류로 묶일 법한 엽서는 사정이 좀 다르다. 편지 쓸 일도 없으면서 편지지를 사는 건 아무래도 낭비라는 생각이 드는데 엽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전시회를 보고 나오거나 해외여행 후 그 장소를 기억하고 싶을 때 꼬박꼬박 엽서를 산다. 그렇게 모은 엽서들은 내 방과 사무실 자리에 몇 개씩이나 붙어 있는데, 이렇게 벽에 아무렇게나 붙여 놓아도 꽤 분위기가 있으므로 편지지보다는 용도가 다양하다고 합리화를 해본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문득 지겹다는 생각이 들면 모아둔 엽서들을 뒤져서 다른 것으로 바꾸어 붙이고 그중 튼튼한 엽서는 책갈피로 쓰기도 한다. 말하자면 내가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엽서들은 본래의 용도, 즉 글씨가 쓰이는 것만 제외한 모든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엽서에 글을 쓰는 것은 왠지 아깝다. 이 세상에 똑같은 엽서가 수백, 수천 장은 인쇄되어 돌아다닐 테지만, 어쨌든 내가 그걸 한 장밖에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엽서에 글을 쓰는 건 마치 새 학기에 새 공책을 펼쳐 첫 장을 쓰는 것처럼 긴장되는 일이다. 어린 시절 나는 마음에 쏙 드는 공책을 발견하면 두 개를 산 다음 하나는 책상 밑 보물상자에 모셔 두고 남은 하나를 마음껏 썼다. 공책이 구겨지거나 글씨가 마음에 안 들게 쓰이더라도 나머지 한 개가 온전히 남아 있다는 생각에 속상해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절 정말로 애지중지했던 멋진 공책들은 지금 방 한구석에서 조용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이제는 정말 쓸 일이 없기 때문에 유용하지도 않을뿐더러 예전처럼 멋지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엽서가 찢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벽에 붙여 두면서도, 이것들 또한 언젠가는 어딘가의 구석에서 까맣게 잊혀 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럴 바에는 지금 당장 제일 특별하고 예쁜 엽서 한 장을 꺼내 멋진 펜으로 편지를 써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아주 아끼는 거라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마음이니 당신에게만 주는 거라고 실컷 생색을 내어 가면서. 물욕이 차고 넘치는 바람에 아직까지 그걸 실천한 적은 없지만, 늘 이상한 부분에서 충동적인 내가 언젠가 갑자기 그런 결단을 내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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