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관하여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 외에 너무 많은 활동을 하면 몸이 침대를 식탁이나 책상 따위로 인식하기 시작하여 쉽게 잠들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잘 시간이 아니면 잘 눕지 않는 편인데, 눕는 걸 싫어해서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잠이 많은 인간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그렇다. 한 번 누우면 거의 무조건 잠든다고 보면 되기 때문에 할 일이 있는 상태에서 섣불리 눕는 건 무릎 보호대 없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행동이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침대는 내게 조금 낯선 가구였다. 독립하면서 침대를 사기 전까지는 온 가족이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기 때문에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침대를 접해볼 일이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살던 집에는 식탁이나 소파도 없었고, 일단 집에 들어오면 서 있을 수는 없으니 자연스럽게 바닥에 앉게 되는 구조였다. 자고 일어나면 이불을 정리한 후 그 자리에 상을 펴 밥을 먹었고 그릇을 치우고 나면 같은 상에서 공부를 했다. 그렇기에 내게는 방바닥이 곧 침대이자 식탁, 소파, 책상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데서나 머리만 대면 잠드는 너그러운 수면 습관도 그러한 생활방식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의자에 앉아서 공부를 하다가 ‘잠깐 누워볼까’ 하는 건 어느 정도 결심이 필요하지만, 애초에 뜨끈한 방바닥에 앉아 있었다면 언제든지 물 흐르듯 눕게 되는 법이다.
그렇게 수면 공간과 놀이, 공부, 식사 공간이 전혀 분리되지 않은 곳에서 20년이 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수면은 나의 큰 자랑거리 중 하나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중 <공주와 강낭콩>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자신이 공주라고 주장하는 소녀의 말이 진짜인지 시험하기 위해 매트리스 여러 장을 깔고 맨 밑에 강낭콩 한 알을 넣어 두었고 다음날 소녀가 등이 배겨 잠을 잘 못 잤다고 불평을 하는 바람에 공주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마 여러 어처구니없는 동화 중에서도 가장 공감할 수 없었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딱딱한 바닥에서 자는 걸 불편해하거나 버스 혹은 비행기에서 잠을 못 자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처음 알게 되었으니까.
내게 입식 생활이 더 잘 맞는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은 건 놀랍게도 고작 몇 개월 간의 기숙사 생활이었다. 대학생 때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간 적이 있는데, 학교에서 제공하는 기숙사에는 (당연하게도) 침대가 있었고 (이 또한 당연하게도) 공용 식탁과 책상이 있었다. 갑작스럽게 식사-공부-여가-취침의 공간이 모두 분리되어 버린 나는 한동안 어색하기 그지없는 적응기간을 거치다가 어느덧 그 생활에 완벽히 적응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전까지는 ‘나도 침대 생활이란 걸 해 보고는 싶다’였던 작은 욕망이 한국으로 귀국할 즈음에는 ‘침대가 없으면 안 된다’로 변모하여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침대 생활을 일 년 정도 하고 있는 지금의 소회는 ‘이제는 침대와 전기장판 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되었다’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지금 사용 중인 침대는 서랍이 달려 있어 수납이 용이하고, 매장에 직접 가서 이리저리 누워본 후 심혈을 기울여 구매한 매트리스도 아주 푹신해 마음에 쏙 든다. 독립 후에도 여전히 소파는 없지만 식탁은 갖추었다. 바닥에 앉을 일이 없어 바닥 청소를 덜 하게 되었다는 것만 빼면 아주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좌식 생활로 돌아갈 일은 아무래도 없을 듯하다. 그리하여 온 가족이 추위를 견디는 펭귄처럼 옹기종기 모여 잠들었던 장면들은 이제 내 흐릿한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다. 잠결에 서로 이불을 뺏느라 엉망진창이 된 이부자리, 달달달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와 할머니의 기침 소리, 조용히 지지직거리는 TV 소리 같은 것들도. 어른이 되고 침대를 사면서 <공주와 강낭콩>에 나오는 소녀처럼 공주가 되지는 못했으나 여전히 잘 자는 나는,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변함없이 그 딱딱하고 후끈후끈한 방바닥이 떠오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