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집중이 안될까

유리창과 도라에몽의 상관관계

by 바삭

한겨울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의 열기 때문에 열차 안이 후끈후끈하다. 서울 2호선 마의 구간이라고 불리는 역들을 차례로 통과해야 하는 나는 앉는 건 고사하고 출입문 쪽에 딱 붙어 있다가 사람들이 타고 내릴 때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기 일쑤다. 그렇게 손잡이도 잡지 않았는데 몸이 한 자리에 고정되는가 하면 자의가 아닌 타의로 걷게 되는 신비한 경험을 매일 아침 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건 분노 조절에 악영향만 끼치는 행동이기 때문에, 일부러 넋을 빼놓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발랄하고 행복한 아이돌 노래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것이 나름의 노하우다.


지난주 출근길에도 여지없이 볼륨을 더 높이고 리듬에 몸을 맡기라는 대책 없이 신나는 노래 가사에 집중하고 있는데, 문득 출입문 유리창에 뽀얗게 서린 수증기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거기에 도라에몽을 그리고 싶다는 참을 수 없는 욕망이 일었지만 내 주위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 있는 바람에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다. 어느 정도 혼자만의 공간이 보장되는 광역버스나 택시 안이었다면 주저 없이 도라에몽 파티를 열었겠지만, 별로 기분 좋은 상태는 아닐 것이 뻔한 아침 지옥철 서울 시민들의 심기를 자극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두 손을 얌전히 패딩 주머니 속에 봉인해 두었다.


세상에는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할 거면 살 이유가 없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돈 주니까 일한다는 사람도 있다. 누구는 맞고 누구는 틀리다고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애초에 내가 어느 쪽에 속하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맞고 틀림을 판단할 수가 없다. 일에서 보람과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가도, 뭔가에 집중한 지 20분도 안 돼서 딴짓을 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빠져드는 걸 보면 그나마 돈이라도 받기 때문에 끊임없이 뭔갈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예술고등학교, 미술대학교에 차례로 진학하며 주변 사람들은 나를 ‘꿈을 빨리 찾은 사람’이라고 여겨 주었고 스스로도 하고 싶은 게 뚜렷한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졌던 같다. 기본적으로 고집이 세고 하고 싶은 일에는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는 성격이긴 하지만 뭔가가 항상 부족한 느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말하자면 ‘진정으로 이 일이 하고 싶다면 좀 더 열정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고작 이 정도로 노력하면서 꿈을 가졌다고 할 수 있나?’ 같은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무슨 굉장한 열정이 있는 것처럼 해놓고는 딱히 특별하지 않은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며 먹고살고, 고작 출근길에 도라에몽을 그리고 싶어 하는 이런 삶이… 까지 생각하다가 힘겹게 브레이크를 밟아 뇌를 멈춘다. 그런 식으로 모든 일의 인과관계에 집착하다 보면 나처럼 생각 많은 인간은 괜히 집중력만 분산되어 어느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과거에 무엇을 하고 싶었든, 지금 뭘 하며 살고 있든, 앞으로 뭘 하고 싶든 간에 일단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 일에 최대한으로 집중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요즘처럼 복잡한 세상에서는 뭐든지 ‘무식하게 그냥 하면’ 안되고 똘똘하게 계획을 세우며 전략적으로 살아야 한다지만, 당장 다가올 하루하루가 예상 밖인 나는 오늘 일과를 모두 소화하고 내일의 전략까지 세울 근육까지는 미처 키우지 못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되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지는 말기를, 유리창 밖에서 기대한 것과 유리창 안에서 겪는 현실이 다르다고 불평불만만 가득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대하는 만큼 준비하는 사람이 되기를, 그래서 항상 후회 없는 사람이 되기를.


심대윤, <소반을 만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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