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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 낭만

별빛에 관하여

by 바삭

별자리 보는 앱을 즐겨 사용한다. 앱을 실행하면 현재 위치를 기반으로 지구 반대편, 즉 발밑에 있는 별들까지 모두 볼 수 있는데, 그러면 아스팔트 도시가 아니라 은하수를 딛고 선 것만 같은 착각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날씨가 아무리 흐려도 휴대전화 화면에 떠오른 가상 별자리를 보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니 참으로 가성비 좋은 현대인의 낭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별빛 하나 없는 까만 밤이라는 말은 아주 주관적인 표현이다. 나처럼 기술에 지배당한 현대인은 기술을 빌려서라도 기어코 숨은 별들을 찾아낸다. 그런데 육안으로는 평생 그 별들을 볼 수 없을 확률이 높다. 내가 이렇게 가상의 별에 의존할수록 실제의 별들은 점점 더 옅어질 테고, 그럼 나는 더욱더 가상의 별에 집착하고, 진짜 별을 제대로 본 적도 없으면서 가상의 것이 진짜라고 믿고... 그런 낭만 없는 시나리오가 떠오르긴 하지만 인간에게는 상상력이 있으니 괜찮다. 실제로는 전혀 사자 모양도 아니면서 사자자리라는 멋진 이름을 떡하니 차지한 점 몇 개를 (정확히는 점 몇 개가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추측되는 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적어도 이 광활한 우주 속에 나 혼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불이 꺼진 마음들을 밝히기에 빛은 너무 멀리 있긴 하지만, 적어도 거기에 빛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큰 위로가 된다.


나는 반짝이는 별만큼이나 남들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좋아한다. 부동의 1위, 금메달, 완벽한, 천재적인, 기록적인... 그런 말들로 수식할 수 있는, 예를 들면 올림픽 하이라이트 모음집이나 대상 수상의 순간 같은 것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그 반짝임을 너무 동경한 나머지 조금이라도 덜 반짝이는 것들을 모른 척했다.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제일 잘 나온 사진만 저장하고 큰 스포츠 경기가 있으면 혹시라도 이기지 못할까 봐 너무 겁이 나서 경기 결과를 알고 난 뒤에야 재방송을 시청했다. 어느 누구도 인생을 하이라이트 모음집처럼 살 수 없다는 걸 무의식 중에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런 단편적인 반짝임의 순간들을 보는 게 훨씬 더 황홀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가상으로 구현된 화면 속 별자리들을 보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별에서 태어났고 별 위에 발 붙이고 살아가면서도 자주 그 사실을 잊는다. 평생토록 하나의 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무서운 사실은 금방 당연해지고 매 순간 애써 기억하기조차 귀찮아진다. 숨 쉬는 걸 잊듯이, 눈을 깜빡거리는 걸 잊듯이 우리는 별이 우리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도 잊는다. 가끔은 세상에 처음 발 붙였을 때의 두려움과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권태만이 남는다. 그래서 머리 위로 스치는 아주 먼 별들의 희미한 빛을 보며 이야기를 만들고 잃어버린 마음을, 고향을, 희망을 상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평생 나와는 마주칠 일이 없을지라도 일단은 같은 별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나름의 반짝임을 찾으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까만 밤까지 이어지는 야근으로 인한 반짝이는 눈물과 반짝이는 형광등 불빛 말고, 반짝반짝 빛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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