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 관하여
어른이 되었음을 가장 크게 느끼는 순간은 역시 시간과 체력을 돈으로 사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다. 단적인 예로 요즘 나는 아무런 고민 없이 택시를 부르는 빈도가 많이 늘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 년에 택시를 타는 횟수를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천 원 이내로 충분히 갈만한 거리를 그 몇 배의 돈을 들여 이동하는 친구들과 선배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와 택시를 이용할 경우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을 각각 계산한 다음, 시간을 절반 이상 아낄 수 있다면 거의 대부분 택시를 선택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돈이 적게 드는 루트를 선택했던 과거의 내 인식 속에선 시간이 '재산'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돈은 항상 부족했지만 시간은 자고 일어나면 계속 생기는 화수분에 가까웠다. 그러나 직장에 발이 묶여 있는 지금, 시간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재산이 되고 말았다. 돈을 조금 더 들이는 한이 있더라도 시간을 아껴주는 선택지가 훨씬 이득이다. 날이 추워서, 날이 더워서, 시간이 늦어서, 시간이 애매해서, 짐이 많아서... 택시를 타야 하는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혹시나 지금 내가 게을러서 가랑비 새듯 택시비가 줄줄 나가고 있는 걸 “시간은 금이다”라는 논리로 변명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사실은 그것도 조금 맞다.
어쨌든 택시를 많이 이용할수록 다양한 유형의 택시 기사님들을 만나볼 기회도 늘었다. 나는 차멀미가 심해서 장거리 이동시 꼭 이어폰을 착용해야 하므로 정답게 대화를 하는 일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내게 말을 붙였는데 단답으로 대화를 차단해버릴 정도로 매몰찬 성격은 못 되기 때문에 종종 기사님과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물론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도 많은 것이 사실이나 그런 씁쓸한 기억들은 친구와 함께 시원하게 욕 한 번 하고 털어버리는 것이 낫기 때문에 굳이 기억해내려 하지는 않겠다. 대신에 인상 깊었던 기사님 몇 분은 기억 속에 나름 선명히 남아 있다. 그중에는 시종일관 택시 안의 온도가 적절한지, 좌석은 편안한지 등을 체크해 주시며 후기를 남겨본 적이 없는 내가 별점 5개를 손수 입력하게 만들었던 기사님, 절대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는 자정의 논현역에서 기적처럼 다가와 우리 일행을 태워주시고는 록 음악을 꽝꽝 틀어대며 신호 대기 구간마다 핸들에서 손을 놓고 조수석에 놓여 있던 기타를 연주해 우리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기사님 외 다수가 포함되어 있다.
템플 스테이를 하러 충청북도 영동군에 갔을 때의 일이다. 기차역에서 산속에 있는 절까지 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그때 만난 기사님은 고향에 상당한 자긍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외지에서 온 젊은이가 산속 사찰에서 하룻밤을 묵고 간다니 이보다 신나는 일이 없다는 듯 지나가는 장소마다 이것저것 설명해주시기 바빴다. 그 덕에 나는 이 지역 중학교 4개가 폐교된 뒤 하나로 통합되었다는 씁쓸한 사실을, 지금 지나가는 저 산 중턱에는 ‘사’ 자 들어가는 직업을 가진 부자들이 지어놓은 별장이 모여 있고 풍경이 아주 기똥차니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이곳에 땅을 사라는 꿀팁을, 그리고 백화산 중턱에는 호랑이가 살기에 조심해야 한다는 마무리 농담까지 단 10분 만에 습득하게 되었다. 마법의 세 단어 "진짜요/ 그렇구나/ 우와 신기하다!"만 있으면 이렇게 놀라운 이야기들을 쉴 새 없이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도로 경험이 전무한 장롱면허인으로서 택시를 타는 행위란 과장 조금 보태서 기사님의 손에 내 목숨을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 박완서 선생님의 수필 중 <수많은 믿음의 교감>이라는 글에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 한밤중 얼어붙은 눈길을 달리는 택시에 당신과 당신 식구들의 안전을 전적으로 맡길 수 있었던 까닭은 아마 운전기사를 향한 보이지 않는 신뢰 덕분이었을 거라고. 그래서 나도 불쾌했던 대화나 승차 거부의 경험들은 그냥 운수 나쁜 일들로 치부해버리고 택시에 몸을 맡길 때는 항상 기분 좋은 “안녕하세요”를 건네려고 노력한다. 하루가 다르게 귀찮음이 늘어가는 걸 봐서는 앞으로 택시 탈 일도 더 많아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에, 아무쪼록 이번에도 이 게으른 인간을 목적지까지 잘 부탁드린다는 뜻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