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피곤해 죽어도 맥주

by 바삭

내 소유의 물건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눠진다. 대체할 수 있는 것과 대체할 수 없는 것.


예를 들어 화장실에 있는 히말라야 솔트 치약은 전자에 해당한다. 특정 브랜드 치약을 고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아무 치약이나 잘 쓴다. 옷이나 향수처럼 취향이 반영되는 물건은 분류가 조금 더 까다롭다. 대체품을 찾을 수는 있겠으나 그러기까지 공을 많이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체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둘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쪽에 포함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절대로 대체할 수 없는 물건은 이런 것이다. 5년 전 베를린 여행에서 사 온 엽서, 엄마가 써 준 편지, 그리고 부동산 계약서 원본. 반드시 '그것'만이 나에게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 물건뿐만 아니라 특정한 경험들도 이 쪽에 포함된다. 해가 저물 때쯤 한강에서 자전거 타기, 가족과 함께 하는 생일 파티, 아무 일정 없는 주말에 빨래를 돌려놓고 읽는 책 한 권, 겨울에 마시는 따뜻한 라테, 그리고 여름에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맥주.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맥주에 관해서는 아주 엄격하고 진지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그것이 아닌 비슷한 무엇으로는 절대로 같은 크기의 만족을 얻을 수 없다. 여름에 공원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덥고 힘이 드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스스로를 격려하기 위해 달리기를 끝내고 얻을 수 있는 보상을 떠올릴 것이다. 그럴 때 "한 바퀴만 더 돌면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으니 힘내자"는 가능하다. 그러나 "한 바퀴만 더 돌면 시원한 콜라가 나를 기다린다’로는 힘이 안 난다. 물론 나는 콜라도 좋아한다. 하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맥주의 시원함은 유일무이하다. 어떤 무엇으로도 그 상쾌함을 대체할 수가 없다.


겨울옷을 정리해 집어넣고 맥주값으로 나가는 돈이 슬금슬금 늘어나는 요즘, 몇 주 안에 무자비하게 들이닥칠 무더위가 몹시 두렵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올해 여름은 역대급으로 덥대"라는 예측도 무슨 도시 괴담처럼 퍼지기 시작한다. 여름은 분명 매력적이긴 하지만 온전히 사랑할 수는 없는 애증의 계절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맥주가 없었다면 여름을 나는 일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 매일 아침 6시 50분에 일어나 30분간 글을 쓰고 출근합니다.

과음한 다음날에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거나 TMI를 남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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