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사는 어떻게 쓰는 거야

by 바삭

노랫말에 과몰입하기

내 플레이리스트는 적은 수의 곡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무한반복 시스템이다. 뭐든지 좁고 깊게 파고드는 성향이라 그렇다. 한 곡에 꽂히면 재생 버튼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듣다가 악기 소리 하나까지 외울 때쯤 비로소 놓아준다. 그렇다고 대단히 까다로운 취향을 가지고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건 아니다. 새로운 곡을 재생목록에 추가할 때는 먼저 가사를 유심히 듣는데, 종종 한국말인데도 잘 안 들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가사 창을 띄워놓고 시나 소설을 감상하듯 읽어 내려간다. 어떤 가사는 애틋한 사랑 편지 같고, 어떤 가사는 새벽 2시쯤 스스로에게 전하는 위로로 가득 채운 일기장 같고, 어떤 가사는 얼큰하게 취한 친구가 의식의 흐름대로 내뱉는 것 같다. 가사를 정독한 뒤 노래를 다시 들으면 처음과는 달라진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제 마음을 어찌 이리 잘 아시나요

노랫말을 쓰는 건 정말 경이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노래를 만들고 부른 사람과 그걸 듣는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이인데도, 3분에서 5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매우 깊은 감정의 교류가 이루어진다. 이유 없이 지치는 퇴근길에 가사 한 줄로 순식간에 힘이 나기도 하고, 이별 뒤 슬픈 노래를 들으며 누가 내 얘기를 써놨다며 내적 친밀감을 느끼기도 한다. 언젠가 한 유명 가수의 인터뷰에서 ‘힘들 때 음악으로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나 역시 가수를 꿈꾸게 되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을 만큼 음악은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다.



1%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음악

감수성 충만한 학창 시절에는 오히려 대중가요를 잘 듣지 않았다. 심오한 가사를 곱씹으며 생각에 잠기고, 절절한 사랑을 해본 적도 없으면서 절절한 사랑 노래를 들으며 진한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반면 요즘은 최신 케이팝을 두루 섭렵하는 중이다. 아차 하면 땅굴을 파고드는 텐션을 한껏 끌어올리기에 또 그만한 장르가 없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대중가요는 풋풋한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루긴 하나, 자존감을 한껏 끌어올려주거나 꿈을 응원하는 예쁜 가사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어 듣는 재미가 있다. 학창 시절의 난해했던 플레이리스트를 회상하며 최근 플레이리스트를 훑어보니 왠지 정신 연령이 퇴보한 것 같아 조금 머쓱해졌지만 뭐··· 직장인인 지금은 자신감과 낭만이 부족하고 그때는 절절한 사랑과 인생의 쓴맛이 궁금했나 보다. 무의식 중에 아쉬움을 느끼는 빈 부분들을 음악으로 채우고 있는 것일지도.





* 매일 아침 6시 50분에 일어나 30분간 글을 쓰고 출근합니다.

과음한 다음날에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거나 TMI를 남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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