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스몰토크 고찰

by 바삭

*스몰토크: 사회적 관계 맺기를 위해 가벼운 주제로 나누는 대화.


주말 스몰토크

스몰토크에 취약한 사람에게 월요일은 긴장되는 날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꽤나 구체적인 대답을 요하는 바로 그 질문, 바로 “주말에 뭐 했어요?” 때문이다. 그래도 물어본 사람 성의가 있는데 “누워 있었어요.”라는 일곱 글자로 무심하게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사건에 초점을 맞추느냐, 그리고 대화 상대에게 얼마나 성의를 보이느냐에 따라 다르게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앞의 일곱 글자는 “오랜만에 늦잠 자고 밀린 빨래 돌렸어요. 별 거 안 했는데 주말 순삭이라 섭섭해서 혼자 맥주 한 잔 했지 뭐예요.” 정도로 늘려볼 수 있겠다. 뭐 이렇게까지 스몰토크에 열심인가 싶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 월요일 아침의 덜 깬 정신머리 탓에 “그냥… 누워 있었는데요.”라고 대답했다가 순식간에 찾아온 정적을 온몸으로 견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절대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날씨 스몰토크

나는 매일 아침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오랜 습관이 있다. 그런데 마침 날씨 얘기는 가벼운 대화를 시작하는 단골 주제이기도 해서, 오전 시간의 나는 거의 인공지능 비서처럼 그날의 날씨를 브리핑하곤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동료에게는 “안녕하세요, 오늘 너무 덥지 않아요? 어제보다 5도나 높대요.”, 점심 먹기 전 탕비실에서 마주친 선배에게는 “오늘 저녁에 비 온다는데 우산 챙기셨어요?” 하며 말을 건다. 날씨 이야기는 서로에게 부담이 없고, 원한다면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넘어갈 수도 있어서 좋다. 예를 들면 쇼핑 (이제 곧 여름인데 여름옷이 하나도 없어요. 작년에 뭐 입고 다녔는지 모르겠어요.”), 휴가 (여름휴가 계획 세우셨어요? 요즘 제주도에 사람이 많대요.), 명절 (찬바람 부는 걸 보니 벌써 추석이 다가오네요.) 이야기 등이 있다.



콘텐츠 스몰토크

직장 동료들과 점심 식사를 하면 드라마나 영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나는 드라마를 잘 안 보기 때문에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아는 척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그 주에 핫했던 콘텐츠의 요약된 줄거리를 전해 듣는 덕분에 집에 TV가 없는데도 최신 유행 프로그램들을 꿰뚫고 있다. 본인 이야기를 꺼내자니 ‘누구 물어본 사람?’이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 돌아올 것 같고, 그렇다고 상대의 이야기를 묻자니 선 넘는 사람이 될 것 같아 조심스러울 때. 영화나 드라마처럼 재미를 위해 작정하고 만든 가상의 이야기들만큼 꺼내기 좋은 주제도 없다.



잡담의 탈을 쓴 배려

사실 처음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알맹이 없는 잡담이 싫었다. 취미는 무엇인지, 주말엔 뭘 했는지, 어떤 드라마를 좋아하는지. 그런 사소한 질문들에도 마치 면접을 보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대답을 내뱉곤 했다. 저 사람도 딱히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닌 것 같고, 내가 대답하면서도 별로 재미가 없고, 그 모든 상황이 낯설고 불편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런 사소한 질문들이 잔뜩 긴장한 신입을 위한 선배들의 배려였다는 걸 안다.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던 내가 편안히 조직에 녹아들 수 있도록, 부담스럽지 않은 형태로 툭툭 건네는 친절이었다. 정말로 내가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었다면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알맹이 없는 대화는 시간낭비라고 여겼던 나는 그 작은 친절의 위력을 깨닫고 나서부터 스몰토크에 꽤나 진심인 직장인이 되었다.





* 매일 아침 6시 50분에 일어나 30분간 글을 쓰고 출근합니다.

과음한 다음날에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거나 TMI를 남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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