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알레르기
입에서 단내가 나고 몸이 가렵다
침묵에는 얼굴이 없어서 상대방의 모습이 거울처럼 덧씌워진다. 나오고 싶은 말을 부추기는 것은 침묵이다. 무엇이든 들어줄 것 같은 인자함이 침묵에 있다.
고요한 침묵은 맑고 불안한 침묵은 떨린다. 타인은 조용한 얼굴을 보고 무엇이든 받아줄 것 같은 안도감을 느낀다. 반면, 자신은 틈새에 무언가 새어나갈까 불안을 느낀다.
쉴 새 없이 말하는 사람을 보면 놀랍다. 자신을 드러내고파 안달하는데 말 뒤에 사람이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어제 무엇을 했는지 100%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해도 전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내 가려움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면역력이 떨어질 때, 혹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가려움증이 되살아난다. 평소에 늘 사용하던 스킨과 로션에도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 생생한 감각으로 살아난다. 눈이 붓고 얼굴이 붉어진다.
그러나 개인이 감각하는 모든 것은 일기장, 혹은 의사의 5,000원 처방전에서나 의미가 있을 거다. 소비는 경제를 돌아가게 하고 의료 보험은 한국의 사회 보장 제도가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시켜줄 테니까.
누군가에게 면역력이 떨어져서 얼굴이 가렵고, 전날 밤에는 늘 사용하던 스킨로션이 얼굴을 자극해서 새벽이 올 때까지 얼굴을 긁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상대방은 반갑게 맞장구를 치면서 점심 뭐 먹지, 노곤하네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침묵은 금이라고 하는데, 침묵이 소중한 게 아니라 우리가 내뱉는 말들이 원체 쓸모가 없어서 입 좀 다물라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 0.01%라도 참신함이나 정보가 섞인 말들에 유달리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결론은 요즘 신체나 정신이나 예민하다. 실수를 할 것 같아 말을 아끼게 되고 몸은 이곳저곳이 아프다. 가렵다. 천근만근 무겁다. 겨울 때문인가. 금방 지나갈 것 같았던 슬럼프가 길게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