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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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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질 Jun 24. 2023

경주로 내려가는 길

여행 MBTI 너무도 P의 지방 나들이

경주로 내려가는 전날 저녁


주말 기차는 어느새 만석이다. 남은 자리는 꼭두새벽과 늦은 저녁, 나에게 선택권은 없다. 아침 5시 27분에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KTX 코레일을 예약했다. 일어날 수 있을까.


당일 4:00 기상


지각이다. 다행히 화장을 안 하면 제시간에 탈 수는 있겠다. 머리를 감는 둥 마는 둥 양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게 후다닥 준비를 했다. 여름이니까 선풍기는 챙겨야지, 충전기도 챙기고. 혹시 모르니 아이패드도 가져가자. 앗, 곧 차 온다. 띠리릭. 철컥. 그렇게 4시 30분 버스를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오전 5:00 서울역 도착


버스를 내리려는데 바닥에 데구루루 립스틱이 굴러온다. 주워서 살펴보니 말린 장미의 색, 웜톤이다. 왠지 하차문 옆에 앉아있은  흑인 여성의 피부톤과 잘 어울린다. 아이콘택을 하고, 손에 든 립스틱을 보여주니 매우 좋아했다. 



아직 출발까지 30분이 남았길래 아침을 먹을만한 곳이 있나 둘러봤다. 맥도널드와 롯데리아가 바로 옆지점으로 딱 붙어있다. 어디를 가지, 처음에는 롯데리아로 들어왔다가 시그니처 메뉴가 기억나지 않는데 싶어서 다시 나왔다. 굳이 나눠본 적은 없지만 맥도널드 브랜드 파워가 더 강한가?



2030 연령대에게는 맥도널드가 압승이군.


아침에는 버거를 팔지 않아서 맥모닝 vs 스낵랩 중에 골라야 했다. 선택의 연속이군. 통빵은 뻑뻑할 것 같아서 치킨 스낵랩을 시켰다. 메뉴는 엄청 빠르게 나왔다. 아이스커피를 곁들여서 먹었는데 (맥도널드 주제에 아메리카노 가격이 2700원, 충격이다) 스낵랩이 너무 작아서 슬펐다.


5시 20분 신경주행 승차


시간이 되어 KTX 5호차에 탔다. 옆자리에는 큰 가방을 멘 외국인이 탔다. 하이, 웃으면서 인사했다. 홀로 여행을 다닐 때 타지분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을 붙이면 좋아할까. 말을 붙이기를 원할지, 붙이지 않기를 원할지 짐작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대화를 하고 싶다면 말을 걸겠지 싶어 잠자코 있었다.


가져온 책을 읽다가 20쪽도 채 넘기지 못하고 잠들었다.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7시 20분을 조금 넘겼을 때 여기저기에서 알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이 아침 시간을 살짝 훔쳐본 기분이었다.


7시 40분 신경주역 하차


신경주역 1번 출구의 오른편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앉았다가, 내가 타야 할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말을 듣고 일어섰다. 멀리서 오는 버스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버스기사님은 한 손으로 빗금을 그었다. 외지인인 나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 멍해 있었고, 그새 버스는 내 옆을 지나쳐 다시 저 멀리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망연자실한 나를 두고 보던 다른 버스기사 아저씨가 나에게 할 말이 있었나 보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묻고 타라고 하셨는데, 난 얼결에 타고는 버스 번호조차 확인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가 내릴 곳을 알려주겠다며, 앉아 있으라 하셨다.


타야 할 버스는 나를 지나치고, 영문도 모르게 탄 버스는 내가 가야 할 곳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구나. (물론 도착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창밖으로 산과 숲과 파랗게 자란 논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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