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경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질 Jun 30. 2023

경주살이는 제법 고즈넉해서, 천상숲

친구는 어느새 경상도 토박이가 되어 서울 촌놈의 여행을 챙기기 시작했다

버스정류장 앞에는 친구가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의 집은 5분 거리의 아파트였고, 오래된 구축이지만 상태가 좋았으며 큰 거실, 2개의 베란다, 하나의 방을 혼자 쓰고 있었다. 집주인 아주머니가 딸의 작업실을 만들어주고자 리모델링을 새로 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컨디션이 좋고 온수도 잘 나왔다.


주변은 거주지라 조용했다. 역시 5분 거리에 간단히 목을 축일 동네 치킨집, 동네 단골이 많은 고깃집이 있었지만, 경주 사람들의 성향이 조용한 것인지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없었다. (몰랐는데 경주는 소고기로 유명하다 했다. 횡성을 1위로 두고 2위를 다툴 정도라는데, 막상 일정이 빠듯해 나는 먹지 못하고 돌아왔다.)


잠시 집에서 쉬다가 집 앞에 있는 라멘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라멘 두 개와 고로케를 먹었는데, 살면서 이 음식점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해서 웃겼다. 라멘은 맛이 있었고, 콜라는 시원했다. 고구마 고로케에서는 특이하게도 감자 맛이 났다.


친구는 전날 불국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했다고 말했다. 조용하게 불국사의 세세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단다. 다만 108배를 하면서 108개의 염주를 꿰는 일을 해서 몸이 지친다고 했다. 템플스테이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는데, 가장 유명한 절이라 할 수 있는 불국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한 사람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하고는 다음 목적지인 천상숲으로 향했다. 사실 경주는 수학여행 단골 지역이기도 했고, 나는 순전히 친구 얼굴을 보려고 내려왔던 터라 여행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그럼에도 거주민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나 보다. 짧은 1박 2일의 일정에 많은 것을 보고 왔으니 말이다.


천상숲은 잘 가꾸어진 숲이다. 리뷰 글을 읽으니 제주도 숲 느낌이 나서 가보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숲 옆으로 흐르는 개천 위의 통나무 다리에서 사진을 찍는 것처럼 보였다. 친구와 천상숲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쯤이 되었는데, 해가 가장 수직으로 내리쬘 시간이니 얼마나 뜨거웠을지 생각을 해보라.


나뭇잎이 햇빛을 가려주는 지역도 있었지만, 꽃을 심어둔 정원은 햇빛을 가리는 나무 하나 없이 땡볕이었다. 그래서 땀이 많이 났고, 너무 더운 순간마다 친구와 웃음을 터뜨렸다. 더위를 피하려고 숲으로 온 것인데 오히려 햇빛으로 샤워를 했다. 그럼에도 초록을 눈에 가득 담고 올 수 있어서 좋았다.



천상숲 깊숙한 곳에는 연잎이 가득한 연못이 있다. 그 옆에는 정자가 있는데, 워낙 구석에 있다 보니 사람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아서 오롯하게 쉴 수 있다. 더위와 108배의 피로에 지친 친구, 새벽 4시부터 기차 타고 지방으로 내려온 나는 한마음이 되어 정자에 누웠다. 먼지가 쌓인 바닥, 지도 팸플릿을 베개로 삼았다. 그렇게 1시간 30분의 시간을 누워 있었다. 경주의 여행을 떠올릴 때 이 시간이 오래 기억날 것 같다.


너 황리단길 가봤어? 친구가 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경주로 내려가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