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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질 Jul 01. 2023

경주의 새로운 흐름, 황리단길

전국의 젊은이들 황리단길에 다 모였네

경주는 고풍스러운 역사의 도시로 생각되지만, 황리단길은 경주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젊은이들의 활기가 넘치는 거리. 맛있는 간식, 서점, 옷가게, 사진관이 모였다. 사람도 그만큼 많은데, 아직까지 서울의 인사동처럼 차 없는 거리 등을 만들지는 못한 모양이다. 사람들 사이로 차가 지나다녀 더욱 혼잡하다.


친구의 말로는 주말에 이렇게 사람이 없는 것은 처음 본다고 했다. 주말에 황리단길을 오는 로컬 주민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보니, 아마도 다들 비가 온다는 뉴스를 보고 여행을 미룬 게 아닐까 추측이 된다. 다만 서울의 인파가 싫어 경주로 도망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많은 인파였다.


너 쫀드기 먹어볼래? 하는 말에 경주 쫀드기를 처음 먹어봤다. 3,000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양을 많이 준다. 따뜻할 때 먹으면 아주 쫄깃쫄깃하고 부드럽다. 라면 스프를 잔뜩 바른 맛인데, 아마 어릴 적에 한 번쯤은 생라면에 스프를 뿌려서 먹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추억의 불량식품을 먹는 기분이다. 입맛에 맞아 잘 먹었다.


서울 외 지역으로 나갈 때마다 로컬 서점을 찾아가는 편이다. 마침 황리단길에 '어서어서'라는 독립서점이 있다고 하길래 들러봤다. 사람들에게 꽤나 사랑받는 공간인 듯했다. 좁은 서점에 사람이 가득 차서 움직이기도 힘이 들었다. 진풍경이네. 책 보다 사람이 더 많나?


오랜만에 시집이 읽고 싶어 져서 시집 섹션을 찾았다. 그중 '우리 다른 이야기하자'라는 책 제목이 눈에 띄었다. 커버 뒷면을 살펴보니 인쇄된 시의 일부가 보였다. 작가의 호흡이 나의 호흡과 잘 맞는 듯했다. 그 외에도 매거진 B 유튜브 편을 구매하려다, 서점 주인이 쓴 책이라는 점원의 권유에 넘어가 '어디에나 있는, 어디에도 없는 서점' 이렇게 2권을 샀다.


잠시의 시간이었지만, 친구는 서점의 인파에 기가 빨린 듯했다. 숨을 고르러 거리로 나가 조금 걷다 보니 대릉원 사진관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나영석 PD와 김영하 작가의 사진이 보였다. 근사했다. 친구가 우리도 찍을까, 하는데 직원이 가게에서 나와 지금은 대기 없이 바로 찍어드릴 수 있다길래 바로 들어갔다.


사진 촬영은 순식간에 끝났다. 친구와 나란히 서서 웃어보세요, 꽃을 들어서 얼굴을 가려보세요, 서로를 마주 보고 웃어보세요, 의자에 앉아서 자유롭게 찍어보세요. 그렇게 약 20장의 사진을 촬영하고 그중 4장을 고르는 미션이 주어졌는데 친구와 나 한 장씩 가지면 좋을 것 같아서 동일한 사진으로 2장을 뽑았다.


디지털로 본 우리는 상당히 통통해 보였는데, 출력된 인쇄물을 보니 둘 다 잘 나와서 감탄을 했다. 막상 촬영을 할 때는 제일 민망했던, 그래서 웃음이 실실 나왔던 서로 마주 보는 사진이 가장 잘 나왔다. 친구는 자기 집 냉장고에 사진을 붙여놨고, 나는 카카오톡 프로필 프사로 해놨다. 만족스러운 촬영이었다.



그럼에도 오후 4시가 겨우 되었길래, 더위를 식히러 카페에 들어왔다. 어느 카페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게 밖에 망고빙수 그림이 맛있어 보이길래 들어갔다. 가격이 28,000원으로 매우 비쌌다. 경주 핫플레이스의 물가는 서울보다 비싸다는 사실을 체감했으나 워낙 더웠던지라 그냥 시켰다. 얼음물도 500원을 더 받았다.


해가 지고 노을이 지기 시작할 때쯤에 가게를 나왔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갈까 하다가, 문득 첨성대가 보고 싶어졌다. 친구가 첨성대는 황리단길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다길래 걸음을 재촉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는데, 알고 보니 2번째와 4번째 토요일에는 첨성대에서 문화유산을 활용한 행사를 한다고 했다.


첨성대 앞에는 연을 날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하늘의 연들이 이쪽저쪽으로 흩날렸다. 아래에서는 공연이 한창이었다. 승복을 입은 여성이 신나게 북을 치면서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돌았다. 사람들의 호응이 좋으니, 공연이 끝났는데도 사회자가 조금 더 춤춰보라며 댄스곡을 틀었다.


공연자도, 관객도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공연자는 잘 받아주었고, 박자를 맞추기 힘들 정도로 빠른 곡이었는데도 뱅글뱅글 돌면서 춤을 추고 북으로 박자를 맞췄다. 관객인 우리는 사회자에게 불만을 가졌다. 그리고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이후 사물놀이패가 몸을 놀렸고, 가수가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구경하는 인파를 빠져나와 좀 걸었다. 저녁에 보는 무덤들은 주황색 불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났다. 내가 만약 무덤에 살고 있는 조상이라면 유흥 분위기와 밝은 불빛에 싫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관광객으로서는 매우 흡족스러운 야경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와 샤워를 했다. 넷플릭스로 새롭게 나온 블랙미러 시즌 6을 봤는데 전보다 더 잔인한 느낌이었다.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채 잠을 청했는데 생각보다 잠은 잘 왔다. 온종일 돌아다닌 탓일까.


그렇게 경주에서의 첫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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