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과 라바콘
도로 위에 주황색 꼬깔콘도 이름이 있다
괜스레 심통이 나는 하루였어. 사람들에게 거칠게 부딪치고 싶은 날. 혹은 무언가가 나에게 꽝 부딪치면 싶을 정도로 거친 기분이 들었어. 아, 날라가고 싶다. 회사에서 지하철까지는 20분남짓,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허둥거리고 격정적으로 몸을 놀리며 퇴근을 했는데. 지하철에 타고 나 스스로를 돌아보며 지금 내가 힘든가 보다, 하는 자각을 했지.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오은 시인의 없음의 대명사라는 시집을 읽었어. 오은은 다정한 사람이고 다정한 글을 쓰는 사람이야. 가끔 다정한 사람이 필요하거나, 혹은 내가 다정한 사람이 되고만 싶은 참담한 기분이 들 때 오은 시인의 글을 펼쳐보게 돼.
가해자가 된 기분으로 지하철을 탔고, 험한 기분을 감추거나 가라앉히고 싶어서 가방 맨 밑바닥에 넣어놓은 주황색 시집을 열었고, 몇몇 문장에 울컥해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얼굴을 찌푸렸어. 집에 가는 내내 서서 시집을 읽으며 얼굴을 찌푸리는 여자가 이상해 보였을까? 그럴지도 몰라.
시집은 형광 주황색으로, 꼭 도로 위를 굴러다니는 꼬깔콘과 같은 색이었는데. (도로 꼬깔콘 이름이 라바콘이래, 글을 쓰다가 검색하면서 처음 알았어) 문득 오늘은 내가 바람이든 뭐든 아주 약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중심을 잃어 그만 옆으로 넘어지고, 둥그란 원뿔의 몸으로 인해 온종일 뱅글뱅글 같은 자리를 도는 수고를 겪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누군가가 와서 쓰러진 나를 세워줘야 하는데, 그럴 사람이 없어서. 심통이 났나 봐. 집 가는 길 오은 시인의 글을 읽으며. 다정한 오은이 누운 나를 정답게 바라보고 다시 세워주는 느낌을 받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