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바콘과 배터리
배터리, 꺼진다, 아무 응답이 없다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 태블릿을 켰다. 무언가를 막 해보려는 사람의 의지를 툭 꺾는 것은 응답이 없는 기기. 아, 배터리가 없네. 한껏 꼿꼿하게 서 보았던 사람은 다시 관절을 엿가락처럼 늘리며 침대에 눕는다.
배터리는 슬픈 면이 있다. 사람은 필요한 일을 하고자 배터리를 충전하는 수고로움을 겪는다. 몇십 분 혹은 몇 시간의 기다림을 통해 기기의 화면이 100% 알람을 띄우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탔일까. 사람은 배터리를 충전하려던 목적을 까먹고 금방 다른 일에 몰두한다.
그러면 배터리는 기다릴 것이다. 서서히 깎여나가는 제 모습을 보면서. 묵묵히. 테이블 위에서. 충전의 시간보다 몇십 배는 되는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덧 0%를 앞두고 있을 때, 어, 안되는데, 기다릴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배터리의 쓸모는 무언가를 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에 있다. 그러니 사람과 배터리의 두 마음은 절대로 만나지 못할 것이다. 한쪽이 기다릴 때 다른 쪽이 없는 엇갈림이 계속될 것이다. 설령 양쪽의 합이 맞아 드디어 만난다 할지라도, 존재가 아닌 수단으로 만난 자들의 관계가 얼마나 오래갈꺼나.
무엇이든 수단이 되고 부차적인 것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배터리의 운명일 것이다. 도로의 안전을 위해 쓰이는 라바콘이 그런 것처럼. 다 쓰이고 난 배터리와 바닥에 굴러다니는 라바콘은 쓸모가 없으니, 어쩌면 없으니만도 못한 거슬리는 존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