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 애정과 증오의 사이에서
사랑에도 체력이 필요하다. 어떤 시련에도 인간성이 무너지지 않을 만큼의 체력. 누군가에게 어쩌면 사랑이라는 주제는 쉬운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상대방의 기분의 고저에 흔들리지 않고 그를 진정시킬 수 있는 냉철함을 가진 사람이라면 말이다. 나는 느껴질까 말까 하는 작은 바람에도 태풍을 만난 사람처럼 깜짝 놀라고, 쉽게 흔들린다.
머리가 아픈 일을 생각만 해도 이가 꽉 깨물리고 어깨가 뭉친다. 작은 좌절에도 엉엉 울고 화를 낸다. 성정이 예민하다면 노력을 해야지, 하는 단단한(?) 생각으로 운동을 하고, 자주 휴식하고, 술과 카페인을 마시지 않으려 한다. 그것들은 내가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쉽게 닳는 정신적인 체력을 올려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특히 명절이 그렇다. 배터리가 평소보다 몇 곱절로 빠르게 닳는다. 왜 가족이라는 관계는 이렇게 가까운 걸까. 누군가가 관계는 난로와 같아서 멀리 떨어지면 추워지고 너무 가까워지면 타버린다고 했다. 딱 난로와 같은 관계를 맺는 것이 '가족'이라는 관계에서는 정말 쉽지 않다. 사랑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나는 널 사랑하지 않는다며 있는 힘껏 밀어내는 것만 같다.
힘겨운 힘겨루기.
근데 나 이거 왜 하고 있지?
결국 관계에서의 에너지 소모는 적당한 거리를 두지 못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 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너무 가깝기 때문이라고. 상대방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감정을 가진다면 좋을 텐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까 화가 나고, 서운함을 느끼고, 고성이 오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나에게 공간을 조금만 더 주시겠습니까? 저도 공간을 조금 더 드리겠습니다.라고 마음속으로 말한다.
초가을 날씨다. 아직까지는 포근한 듯하면서도, 평소에 입던 옷 그대로 있으면 바람이 한 번 불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환절기는 호르몬에 영향을 주니 울렁울렁 가을을 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이유를 모르게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비염과 같은 기관지 병치레에 고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가을도 무사히 지나고, 겨울도 무사히 지나서 다시 2024년 봄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