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문짝에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하나의 글자를 긁어낸 듯한 흰 글씨가 보였다. 희미한 흔적을 더듬어보니 본래 문장은 일단 멈춤, 멈추시오 라는 글자가 아니었을까. 나와 관계를 맺기 전에 잠시 휴지를 갖고 생각을 하시오, 의 뜻이었겠으나 상대방은 정반대의 언어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아마도 그 방문자는 '비록 그 안내문이 지금의 상황과 맥락에 맞지 않으나, 아마 흥이 많은 집주인일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정말로 문 앞에서 춤을 출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면 다음 사건으로, 멈추라는 경고문을 붙인 시니컬한 주인은 그 모습에 어리둥절하거나, 방문자가 미친 사람이라 생각하거나, 혹은 총을 들고 여기서 썩 꺼져버리라 외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니 확신을 갖기보다 추측할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면 동물이 딱 한 글자를 그렇게 정교하게 떼낼 수는 없었을 테니, 멈, 이라는 글자를 의도적으로 뗀 것도 결국은 사람일 것이다. 사건의 시발점이 된 제3의 인물.
그러면 다음 사건으로, 시발점이 된 제3의 인물의 생각을 따라가 볼 수 있겠다. 무슨 정신으로 남의 집 문 앞에 붙은 안내문을 훼손할 생각을 했나요. 무엇을 의도한 것인가요. 총격이 일어나기를 바랐나요, 아니면 해피엔딩으로 다 같이 댄스타임을 갖기를 원했나요. 당신은 댄서인가요?
인물들은 말이 없다. 그저 글자만 보인다.
멈춤, 멈추시오. 춤, 추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