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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질 Oct 17. 2023

샤케라또와 BPM

경주마의 마음을 안고, 블루스의 속도로 걸었다

어제의 밤은 유난히 음울하고 어두워, 오늘 출근길이 평소보다 여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5분 거리를 뛰거나 종종걸음으로 가지 않고 느릿하게 걸었다. 어딘가 화가 난 것 같은 아주머니를 지나쳤다.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다음 정차까지 7분 남았다. 방금 열차가 떠난 모양이지.


느긋하기로 기왕 마음을 먹으니,

아슬아슬하게 놓친 열차도 아깝지 않았다.


약수역에서 내려, 동일한 방향으로 연어 떼처럼 흐르는 인파를 따라갔다. 그래도 계단을 이용하는 것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게 좋겠지.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편하게 가고 싶은 사람들이 엉망으로 꽉 차있다. 그래도 에스컬레이터의 공간이 좁다 보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초반 열을 맞출 때에는 불만이 있겠지만) 첫 구간만 지나면 나름대로의 질서 정연한 대열이 만들어진다.


3호선 열차가 곧 도착할 듯했다.

발걸음의 BPM을 살짝 높여 보았다.


열차가 출발했고, 회사 앞 지하철 역에 도착했다. 역 앞에 따릉이가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핸드폰으로 잠금을 해제하고, 느리게 출발했다. 오늘따라 햇살이 등을 따뜻하게 데워서 기분이 좋았다. 선선하게 바람이 불지는 않았지만, 포근한 가을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약간의 내리막길이 있어 자전거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쌩하니 가다가, 역시나 쌩하니 갈 길을 가던 차와 부딪칠 뻔했다. 서로 약간의 인상을 썼다. 이후에 약간의 오르막길이 있어, 사람이 걷는 속도보다 느릿느릿하게 올라갔다. 다리가 덜 아프게 기어를 살짝 풀었다.


정류소에 따릉이를 파킹해 놓고 회사를 향해 약 8분을 걸었다. 가기 싫은 발을 억지로 늘이니 속도가 느리다. 보도블록 하나하나를 느끼며 간다. 빠르게 지나가는 옆 사람과 차들을 보며 순간 호흡이 흐트러진다. 이미 마음은 깜짝 놀란 뒤라 경주마처럼 세차게 앞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느릿느릿하게 만들어 놀란 가슴을 잠재운다. 이것을 명상이라 여겼다.


오늘은 온종일 많은 일이 있었지만,

느린 걸음 덕분인지 별 일 없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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