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PM과 카페인
심장의 박동, 흔들리는 것은 나인가, 세상인가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하다가, 문득 디바이스 화면이 눈에 거슬릴 정도로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안드로이드 기기의 새로운 오류인가 싶어 당황하다가, 흔들리는 것이 디바이스 화면이 아니라 내 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장이 세차게 뛰어 온몸이 흔들리니, 눈앞에 정지한 디지털 화면이 좌우로 흔들리는 착시를 느낀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경험을 할까?
심장의 BPM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어, 목의 맥박이 뛰는 것을 느끼거나 온몸이 흔들리는 경험을 자주 한다. 회사의 조용한 사무실에서 평화롭게 키보드를 누르는 순간에도, 나 혼자 세상의 지진과 떨림을 느낀다. 감각이 살아있으니 권태롭지 않아 좋다,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요즘은 되도록 평온한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 이참에 카페인을 끊어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커피를 끊는다는 것은, 술을 그만 마신다거나 비건을 한다는 의미와 같다. 다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더는 소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다만, 소소한 이야기를 건넬 때 상대방에게서 정말, 이라는 말과 함께 놀란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에게 목소리를 내어 말을 한 적은 없다. 그저, 상사분이 카페에 데려가 바질은 뭐 마실래, 할 때 커피 리스트 중에서 고르지 않고 티, 페퍼민트 티 마실게요, 하며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거슬림 없고 대다수의 사람이 모르게 말이다.
한국인들은 카페를 참 좋아하는데, 커피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 이를테면 호주나 이탈리아와 같은 나라들과는 또 다른 기호의 모습을 보인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진정한 커피맛을 찾아 잘 알려지지 않은 카페를 탐방하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바쁜 하루를 버텨내기 위한 수혈 도구 정도로 커피를 소비하는 듯하다.
스타벅스의 경우도 그렇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동일한 서비스와 맛을 가진 음료를 제조하는 것이 가장 장점인 대형 프랜차이즈다. 부정적으로 표현하자면 공장에서 찍어 나오는 양산형 커피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스타벅스의 흔들림 없는 서비스에 열광한다. 직원과 소비자 사이에는 어떠한 유대감도 필요하지 않다. 이미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하는 직장에서 너무 많은 관계들에 지쳐있기 때문이라 본다.
얼마 전에 호주를 다녀왔는데, 호주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느린 BPM과 진또배기 카페인 사랑에 감응을 했다. 호주인들은 여유롭다. 미술관과 박물관, 엄청난 규모의 정원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 시민에게 공짜로 주어진다. 어떤 사람은 서핑을 하다 모래 위에 누워 잠시 낮잠을 자는 친구의 사진을 찍었는데, 그것이 호주인들의 아이덴티티를 대표한다고 하여 굉장한 유명세를 타고 멜버른 주립 미술관에 전시가 되었다고 한다.
시민에게 무료로 주어지는 것들과 그 속에서 느끼는 심리적인 여유가 부러웠다. 한국에서는 천천히 걸으려고 해도, 주변 사람들이 빠르게 걸으니 얼떨결에 걸음이 빨라지는 경험을 자주 한다. 느릿느릿하면 사람과 부딪치게 되는 이상한 나라, 한국의 빠른 BPM을 만든 것은 누굴까 하는 생각을 했다. 또 바쁜 나라에서 바쁜 사람들을 더욱 각성시키는 것이 카페인이니, 어떻게 보면 한국의 커피 소비에는 슬픈 면이 있다고도 느꼈다.